경기도 용인의 평범한 초등학교 3학년 소녀는 스키장에 놀러 갔다가 아버지가 타는 스노보드를 보고 금세 빠져들었다. 남들은 중심 잡기도 힘들어하는 설원 위에서 남다른 균형감각을 뽐냈다. 특히 스노보드를 타고 하늘 높이 도약해 회전하고 착지를 하는 위험한 동작에 유독 매력을 느꼈다. 그 소녀가 바로 대한민국 최초로 스노보드 빅에어 종목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유승은(18·성복고)이었다.
유승은은 10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1차 시기 87.75점, 2차 시기 83.25점을 받아 총점 171점으로 무라세 고코모(일본·179점), 조이 사도스키 시넛(뉴질랜드·172.25점)에 이어 3위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승은의 메달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의 두 번째 메달이자 한국 여자 스키·스노보드 선수 중 첫 메달, 그리고 속도를 겨루는 알파인 종목이 아닌 연기를 채점하는 프리스타일 계열 종목 첫 올림픽 메달이다. 이전까지 한국 스키·스노보드는 알파인 계열인 평행대회전에서 이상호(넥센윈가드)와 김상겸(하이원)이 각각 은메달을 땄다. 유승은 덕분에 이젠 프리스타일 계열에서도 우리나라는 올림픽 메달 국가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종목은 모두 ‘강심장’이 요구되지만 그중에서도 빅에어는 난도가 높고 부상 위험이 가장 큰 종목으로 꼽힌다. 아파트 15층 높이의 대형 점프대에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온 뒤 도약해 점프와 고난도 회전을 펼치며 많은 비거리를 기록하며 안정된 착지까지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유승은의 타고난 재능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숨길 수 없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국내 대회를 휩쓸기 시작한 그는 2022년 주니어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본격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23년 9월 국제스키연맹(FIS) 뉴질랜드 카드로나 세계 주니어 스노보드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을 때만 해도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승은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난관이 닥쳤다. 부상이 문제였다. FIS 월드컵에 나서기 시작한 2024년엔 오른쪽 발목이 골절돼 1년여를 재활에 매달려야 했고, 이후 팔꿈치 탈골에 이어 복귀해 얼마 지나지 않아 손목이 골절되는 시련을 겪었다. 더는 선수생활을 하기 힘들 것 같아 이른 은퇴를 고민했던 위기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유승은은 꺾이지 않았다. 2025∼2026시즌 들어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열린 빅에어 월드컵에서 7위에 오르더니 그 직후 미국 콜로라도주 스팀보트에서 열린 올림픽 전 마지막 월드컵에선 손목에 깁스를 한 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 최초의 월드컵 빅에어 입상이었다.
유승은은 그 흐름을 이어 올림픽 무대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사실 유승은의 올림픽 출전 또한 그 자체로 새 역사였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처음 정식 종목이 된 빅에어에서 한국 여자 선수로는 그가 첫 출전이기 때문이다. 평창 대회 때 정지혜가 대표로 발탁됐으나 부상으로 경기에는 뛰지 못했고, 2022년 베이징 대회 땐 한국 선수가 없었다.
첫 출전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유승은은 예선을 당당히 4위로 통과하며 한국 빅에어 사상 첫 결선 진출도 일궈낸 데 이어 결선 1차 시기에서 올림픽을 바라보며 갈고닦았던 ‘백사이드 트리플 콕 1440’(몸 뒤쪽으로 네 바퀴를 회전하는 기술)을 깔끔하게 선보이며 환호했다. 연습 때 한 번도 성공적으로 착지한 적이 없었던 기술이지만 겁 없는 10대의 패기와 자신감으로 도전해 당당하게 성공했다. 그는 “경기 때는 정말 성공하겠다는 마음이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2차 시기에선 방향을 바꿔 몸을 앞으로 해서 뛰어올라 공중에서 네 바퀴, 1440도를 돌아 완벽하게 착지했다. 여자 선수가 보일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기술을 뽐낸 유승은은 이후 보드를 풀어 설원에 던지는 세리머니를 했다. “너무 신나서 그랬다. 올림픽 전에는 에어매트에서만 해봤고, 그때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이만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한 것”이라고 전했다. 유승은은 “1년 동안 부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없었다. 이번 경험은 제게 ‘다음에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면서 “저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을 대표해 스노보드를 탈 수 있어서 무척 영광이다. 우리도 스노보드를 이 정도로 할 수 있다고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며 미소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