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7학년도부터 5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연평균 668명 확대하기로 발표하자 의료계는 즉각 반발하면서도 집단행동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이다. 지난 의·정 갈등이 수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만큼 의료계가 전면 투쟁 명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대한의사협회(의협) 김택우 회장 등 집행부에 대한 사퇴 목소리까지 나오면서 내홍이 커지고 있다.
의협은 11일 전공의·의대 교수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회의’를 개최하는 등 의대 증원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12일에는 각 시도의사회의 회장들도 회의를 갖는다.
◆의료계, 직역 간 의견 달라
의협은 설 연휴를 전후해 향후 대응 방침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집단행동 등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면서도 “직역 간 의견이 달라 논의를 더 해야 한다. 현재 여론을 모으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다만 여론 수렴을 위해 내부적으로 별도 설문조사를 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전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를 열고 서울 외 지역 32개 의대를 대상으로 향후 5년(2027∼2031년)간 평균 668명 늘려 총 3342명을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교육 현장 부담 완화를 위해 2027년 490명을 시작으로 증원 규모를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의협의 투쟁 수위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의료계 안팎에서는 과거처럼 즉각적인 집단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의대 증원에 반발해 2024년 2월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은 지난해 9월 수련병원 현장으로 복귀했고, 학교를 떠났던 의대생들도 비슷한 시기 돌아왔다. 이제 병원 업무에 적응하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이탈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의대 증원의 경우 논의 과정부터 결론까지 정부가 의료계를 충분히 배려했다는 시각도 있다.
의대 증원분 모두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는 지역의사제로 별도 선발하는 점, 추계 결과보다 증원 규모가 축소된 점 등 의료계가 강경 대응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료계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논의 과정부터 참여했다. 계속 반발하는 건 특혜를 얻기 위한 행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공의·의대생들 “투쟁할 힘 없다”
지난해 수련병원으로 복귀한 한 전공의는 “1년 반이라는 긴 투쟁 시간 동안 상처받은 전공의와 학생들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다시 투쟁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의대생들도 “투쟁할 명분이 부족하다”며 “정부는 교육·실습 여건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의협 집행부가 신뢰를 잃은 것도 투쟁 동력을 상실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경기도의사회는 이날 “김택우 회장은 책임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보다는 ‘조만간 발표될 의대 증원 규모를 전공의와 회원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경우 자진 사퇴하겠다’라고 큰소리치며 양치기 소년 행각을 이어갔다”고 비판했다. 의료계 내부 잡음이 커지면서 김 회장이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다만 공공의대 및 지역 신설의대 설립 추진은 갈등을 증폭시킬 변수로 남아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2030년부터 공공의대(공공의학전문대학원)와 지역 신설의대 설립을 통해 2034∼2037년 600명의 의사를 배출할 계획이다. 의협은 15년간 지역 의무복무를 강제하는 공공의대에 대해서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비판하고, 신설의대에 관해서도 “기존 의대의 인프라 확충이 우선”이라고 반대한다. 하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가 예상치보다 축소된 만큼 공공의대와 지역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환자단체 등의 요구가 많아 향후 설립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