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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2칸씩 올랐는데”… 계단 오를 때 숨 가쁘다면 ‘뇌 노화’ 시작됐다는 신호 [RSNA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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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량 적을수록 뇌 노화 속도 빨라져…‘근감소증’, 치매 부르는 방어선 붕괴 의미
RSNA 연구 “근육 많은 중년, 인지기능 저하 위험 30% 낮아”…하체가 곧 뇌 체력
하루 10번 스쿼트가 10년 뒤를 바꾼다…보충제보다 자연식 단백질이 ‘진짜 저축’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바지 허벅지 부분이 헐렁해진 것을 보며 ‘나잇살이 빠졌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면, 사실 그건 즐거워할 일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비상 신호다.

 

70대 이후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통장 잔고가 아닌 허벅지 근육이다. 꾸준한 스쿼트와 단백질 섭취는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근육 연금’ 저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freepik 제공
70대 이후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통장 잔고가 아닌 허벅지 근육이다. 꾸준한 스쿼트와 단백질 섭취는 치매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근육 연금’ 저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freepik 제공

예전엔 두 칸씩 성큼성큼 오르던 아파트 계단이 이제는 한 칸만 올라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빠진다는 말을 몸소 체감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30대 이후 근육은 매년 0.5~1%씩 줄어들고, 60세 이후에는 그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방치하면 70대에는 젊은 시절 근육의 40%가 증발해버릴 수도 있다.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근육 마르면 뇌도 함께 쪼그라든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문제는 근육 감소가 단순히 기운이 없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북미 영상의학회(RSNA)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근육량이 많은 사람일수록 뇌 노화 속도가 느리고,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힘이 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팀이 50대 성인 1100여명을 분석했더니 근육이 튼튼하고 복부지방이 적은 사람일수록 뇌 용적이 건강하게 유지됐다.

 

국제학술지 ‘Neurology’에 실린 연구도 궤를 같이한다. 근육량이 높은 중년층은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약 30% 이상 낮았다. 반대로 내장지방이 많을수록 신체 나이보다 뇌 나이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배는 나오고 다리는 가는” 전형적인 중년의 체형이 뇌 건강에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뜻이다.

 

치매는 이제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치매 환자는 이미 100만명을 넘은 것으로 집계된다. 2023년 치매 유병률은 약 9.25%로,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1명은 치매를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60세 이상 30%가 근감소 위험…“근육이 최고의 연금”

 

국내 상황은 더 엄중하다. 국민건강영양조사 기반 연구에 따르면 60세 이상 한국 노인에서 사르코페니아(근감소증) 유병률이 약 6~10% 정도로 나타났다. 특히 80세 이상에서는 20% 이상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종로구의 한 복지관에서 만난 김모(68) 씨는 “예전엔 1시간 산책은 일도 아니었는데, 요즘은 20분만 걸어도 무릎이 시리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며 “주변에서 하체 근육이 빠지면 치매가 빨리 온다는 소리를 듣고 겁이 나 운동을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에서 본 노년의 삶에서 근육은 단순한 체력이 아닌 ‘생존 자산’이었다. 근육이 충분한 사람은 병원에 입원해도 회복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여러 역학 연구에서 손아귀 힘(악력)이 약한 사람은 악력이 강한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일부 연구에서는 손아귀 힘이 약한 집단에서 사망 위험이 최대 20~25%까지 높다는 분석도 보고됐다.

 

하체 근력은 심혈관 질환 위험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결국 “근육이 최고의 연금”이라는 말은 노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정직한 지표를 뜻한다.

 

단백질 보충제에만 의존하기보다 평소 식단에서 달걀, 생선 등 자연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근육 생성에 훨씬 효율적이다. 과도한 보충제는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pixabay 제공
단백질 보충제에만 의존하기보다 평소 식단에서 달걀, 생선 등 자연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근육 생성에 훨씬 효율적이다. 과도한 보충제는 신장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pixabay 제공

◆오늘부터 시작하는 ‘근육 저축’…보충제보다 반찬이 먼저

 

그렇다면 이 소중한 자산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기본은 단백질 섭취와 근력 운동의 병행이다.

 

대한노인병학회는 노년층의 경우 체중 1kg당 1.0~1.2g의 단백질 섭취를 권장한다. 70kg 성인이라면 하루에 달걀 5~6개 분량의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한꺼번에 몰아서 먹기보다는 매끼 반찬으로 달걀, 생선, 육류, 콩류를 곁들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운동 역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몸 근육의 60% 이상은 하체에 몰려 있다. ‘허벅지 저축’이 효율이 가장 높은 이유다.

 

계단 오르기는 가장 값싸고 확실한 하체 저축이다. 엘리베이터 버튼 대신 계단 손잡이를 잡는 순간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이 깨어난다. 숨이 조금 차는 정도가 적당하다. 다만 내려올 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체중의 몇 배 하중이 무릎에 실린다. 관절이 불편하다면 내려올 때만큼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편이 낫다. 운동은 오래 가야 의미가 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근육 저축’ .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오늘부터 시작하는 ‘근육 저축’ .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스쿼트는 거창할 필요 없다.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 저녁 뉴스가 시작되기 전, 광고가 나오는 1~2분 동안 10번만 앉았다 일어나도 충분하다. 무릎이 발끝보다 지나치게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허리는 곧게 편 채 천천히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이 핵심이다. 횟수보다 중요한 건 매일 반복하는 습관이다.

 

발뒤꿈치 들기 운동은 더 간단하다. 설거지를 하다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신호등 앞에 서 있다가도 할 수 있다. 발뒤꿈치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2~3초 유지한 뒤 내리는 동작을 반복하면 종아리 근육이 단단해진다. 종아리는 ‘제2의 심장’으로 불린다. 이 작은 움직임이 혈류를 밀어 올리고, 결국 뇌까지 산소를 보낸다.

 

거창한 운동 계획이 없어도 된다. 하루 5분이면 충분하다. 허벅지에 힘이 붙으면 계단에서 덜 숨차고, 몸이 가벼워진다. 그 변화는 결국 몇 년 뒤 뇌 건강으로 돌아온다.

 

근육은 오늘 당장 눈에 띄는 수익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조용히 쌓여 노년의 독립적인 삶을 보장한다. 뇌 건강을 걱정하며 영양제를 찾기 전에,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스쿼트 한 번을 하는 것이 훨씬 영리한 투자다. 뇌를 지키고 싶다면, 답은 당신의 허벅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