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안보 현안 논의가 초기 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지난해 한·미 관세협상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 중 안보 분야에 해당하는 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와 핵추진 잠수함 협력은 정부의 대표적 성과로 인식됐다.
하지만 조인트 팩트시트 공개 직후 미국측 실무협의 방한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미 투자 지연을 문제 삼아 한국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지난달 밝혔다.
통상 분야에서의 미국 측 불만이 안보 분야 합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부는 “미국 협상팀이 2월 말 또는 3월 초쯤 방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리스크 관리에 차질이 빚어지면 수십년에 걸친 핵추진잠수함 건조 시도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속도전으로 성과 노리나
정부는 조인트 팩트시트에 명시된 핵추진잠수함 건조나 우라늄 농축 등에 대해 미국 측의 합의 이행 의지가 있다고 본다.
다만 에너지부, 전쟁부, 국무부 등 관련 부처가 많아서 미 행정부 내 정책 조율 및 협상팀 구성에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수는 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적 환경이 바뀌면, 협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정부는 중간선거 전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미국과의 협상을 빠르게 진행할 모양새다.
국방부는 지난달 전력정책국 산하에 핵추진잠수함획득추진팀을 설치, 국내 환경 정비와 대미 협상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외교부도 관련 팀을 꾸렸다.
국내 환경 정비를 위해 국방부는 핵추진잠수함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내부적으로 초안 관련 검토 등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핵추진잠수함 확보를 위한 작업이 은밀하게 진행됐지만,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공개적인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원자력안전법과 방위사업법, 방위력개선사업 관련 제도는 원자력을 이용한 무기나 군사기술 개발을 상정하지 않고 있다. 기존 규정이나 정책으로는 핵추진잠수함을 설계·제작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시험평가→후속함 건조로 이어지는 함정 제작 절차에 보안·안전 등의 핵 관련 특례를 추가하는 방식이 적용될 전망이다.
핵연료 공급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의 등은 미국과의 협상을 거치면서 특별법 제정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대미 협상 과정에서 미국측이 요구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정부가 예상치 못한 부분이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국방부는 내부 검토와 대미 협상 결과를 토대로 특별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 입법화 과정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美 협정 체결, 변수는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해선 정상간 합의, 미국과의 별도 협정 체결, 미 의회 동의를 모두 거쳐야 한다.
조인트 팩트시트를 통해 양국 정상간 합의를 이뤘으므로, 포괄적 단일 협정을 맺는 것이 순서다.
미국 원자력법은 군용 핵물질 이전을 금지하지만, 별도 조항이 있으면 미국 대통령의 권한으로 이전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핵물질과 기술 활용을 비군사적 용도로 규정한다.
따라서 한·미가 별도로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공급망·비확산·기술이전 등에서 훨씬 복잡한 절차와 높은 정치적 리스크에 직면할 위험이 높다. 이는 핵추진잠수함 프로젝트를 무력화할 수 있다.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등을 방문했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미국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 핵추진 잠수함 건조 협력 사안과 관련한 양국의 별도 협정의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에선 협정 관련 작업도 진행중이다.
협정의 틀은 1958년 미국에 영국에 핵추진잠수함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체결된 미·영 상호방위협정(MDA)과 유사할 전망이다.
미국·영국·호주가 참여하는 오커스(AUKUS)는 잠수함 건조 및 원자력 기반이 없는 호주가 미·영의 기술로 만든 핵추진잠수함을 도입하는 형태다. 민간 원자력 기술과 디젤-전기 추진식 잠수함 건조 기술을 갖춘 한국 실정과는 맞지 않다.
미·영 MDA는 핵무기 설계와 개발, 핵추진잠수함 원자로와 추진체계, 핵연료 등의 교환을 허용하는 범위를 담고 있다.
미국은 MDA에 근거해 온전한 형태의 원자로와 핵연료를 포함해서 핵추진 체계 설계, 안전 기준, 건조 노하우 등의 기술정보를 영국에 제공했다.
영국은 이를 통해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축적, 자체적인 건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미·영 MDA는 양국간의 특수 관계가 반영된 전례 없는 차원의 협력이었다. 인류 최초의 핵폭탄을 만든 맨해튼 계획에 영국이 침여하면서 미·영 관계가 특별한 수준으로 높아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한국이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협정을 맺는다면, 핵연료만 제공하는 것으로 그치기가 어렵다. 안전과 보안 등의 문제 때문이다.
미국으로선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자국 핵추진잠수함과 항공모함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이 저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면, 잠수함 수명주기 동안 1∼2회는 핵연료 교체가 불가피하다. 사용후 핵연료 및 방사성 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핵연료 교체 인프라와 잠수함 유지보수 체계, 군사용 원자력 안전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경험과 기술이 부족하므로 미국의 참여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MDA에 맞먹는 수준의 협력 체계를 요구한다. 1950년대 이래로 단 한번만 실현됐던 특수 협정을 한국이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국 간 협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만큼 정부가 고도의 협상 전략을 구상해야 실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뢰 높일 패키지 전략 필수
미 의회의 움직임은 미국과의 협의에 영향을 끼치는 또다른 변수다. 미 의회조사국(CRS) 자료에 따르면, 냉전 시절 미국은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 캐나다, 파키스탄의 핵추진잠수함 관련 기술 공유 요청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미 의회는 기술 공유 및 이전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배타적 기술 우위 유지와 비확산 원칙 등이 작용한 결과다.
실제로 1987년 11월 5일 멜빈 프라이스 당시 연방하원의원이 캐스퍼 웨인버거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는 “동맹국이 우리의 핵추진 기술을 원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이 이러한 기술의 공개에 일관되게 강력한 반대 정책을 펼쳐왔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캐나다가 핵추진잠수함 10∼12척 도입을 추진하던 1988년 3월 제임스 엑손 당시 연방 상원의원은 “그들(캐나다)은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려 한다. 안전 문제와 더불어 핵추진잠수함 프로그램에 미칠 영향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캐나다는 핵추진잠수함 계획을 포기했다.
한국도 미 의회의 반발과 우려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가 한국과의 합의 내용을 담은 협정을 의회에 제출했을 때나 핵물질과 기술 수출 승인이 필요할 때, 대외군사판매(FMS) 승인 등에서 미 의회의 움직임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때 일부 의원이 자국 내 산업적 이익이나 동북아 안보구도에 대한 인식차 등에 근거해 이의를 제기하면, 모든 움직임이 악영향을 받는다.
비확산 기준 완화에 대한 초당적 반대도 리스크다. 한국은 과거 핵개발을 시도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북한 억제를 위해 한국이 핵무기를 추구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과거 사례를 앞세워 미 의회에서 비확산 기조를 강조하는 초당적 목소리가 나오면, 미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는 더욱 어렵다.
실제로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상원의원 4명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에 대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지원 방침 등과 관련해 핵 확산 위험을 주장하며 우려를 표시했다.
이같은 위험을 극복하려면 신뢰 축적이 필요하다. 비확산 기조는 물론이고 핵 안전을 증진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수시로 강조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핵추진잠수함 건조에 쓰일 핵기술과 핵물질은 잠수함 추진체계에만 사용되며, 한국 정부의 비확산 의지는 확고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원자력 안전과 보안을 위한 인력 양성 및 인프라 구축 계획을 서둘러 마련해 핵추진잠수함을 안전하게 장기간 운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입증해야 한다.
한국은 군함과 상선 기반의 조선 역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핵추진잠수함과 군사용 핵연료 등은 미지의 영역이다. 미국과의 협의에 따른 지원이 필수다. 이를 위해선 면밀한 전략 수립과 신뢰 형성이 중요하다. 대미 협상을 앞두고 치밀하게 설정된 범정부적 전략이 요구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