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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빚은 톱니 산, 가우디 건축 영감 원천 몬세라트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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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서거 100주년 바르셀로나를 가다③>

 

사그라다 파밀리아 12사도 탑 등 가우디 건축엔 몬세라트 대자연 담겨/천년 전 목동이 동굴서 ‘검은 성모상’ 발견해 순례자 성지로/푸니쿨라로 해발고도 1000m 전망대 올라 트레킹/산타 코바 동굴 가는 길 가우디 유일 작품 ‘승천하는 예수’ 만나/영혼 울리는 700년 역사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 연주 가슴 뭉클

몬세라트와 수도원 전경.
몬세라트와 수도원 전경.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신이 빚은 곡선인가. 새파란 하늘 아래 도열한 장엄한 바위 기둥 군상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인을 닮았다. 억겁의 세월 바람이 깎고 또 다듬어 부드러운 톱니 모양 곡선으로 만든 거대한 암봉들. 그 끝자락에 매달린 채, 마치 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성배처럼 자리한 수도원. 갈 길 잃은 이들의 아픈 영혼을 어루만지는 검은 성모의 신비로운 미소. 그리고 천사의 노래 같은 소년합창단 화음까지. 거친 돌길 힘겹게 걸어 천길 낭떠러지 산 미켈(Sant Miquel) 십자가 전망대에 서자 천재 건축가 영감의 원천, 몬세라트(Montserrat)의 장엄한 풍경에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몬세라트와 수도원 전경.
몬세라트와 수도원 전경.
몬세라트를 닮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몬세라트를 닮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가 사랑한 몬세라트

 

가우디는 평소 제자들에게 “자연은 나의 스승이고 열려 있는 책”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자연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의 몬세라트로, 가우디의 모든 건축에 강력한 영향을 줬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옥수수 모양 12개 탑이 바로 몬세라트의 깎아지른 부드러운 봉우리 형상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몬세라트(Montserrat)는 ‘톱니 산’이란 뜻. 가우디는 하늘 높이 솟은 12 탑으로 몬세라트의 웅장함과 신성함을 표현했는데, 이런 디자인을 통해 성당이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이길 원했다. 동쪽 ‘탄생의 파사드’는 돌이 녹아내린 듯한 독특한 질감이 특징으로, 역시 몬세라트의 석회암 동굴과 종유석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가우디는 몬세라트의 부드러우면서 기괴한 유기적 곡선을 건축 전반에 사용했다. 심지어 성당 건축 초기에 몬세라트에서 채굴한 돌까지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에리 드 몬세라트 역에서 타는 케이블카.
아에리 드 몬세라트 역에서 타는 케이블카.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에스파냐광장 역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R5 노선 기차를 타면 한 시간 만에 몬세라트에 닿는다. 수도원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 5분 만에 수도원에 닿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려면 아에리 드 몬세라트(Aeri de Montserrat) 역에서 하차하고, 15~20분 걸리는 산악열차를 타려면 다음 역인 모니스트롤 드 몬세라트(Monistrol de Montserrat) 역을 이용하면 된다. 케이블카로 수도원에 오른 뒤 하산할 때 산악열차를 이용하면 몬세라트의 장엄한 풍경을 모두 즐길 수 있다. 2~3시간 걸리는 트레킹과 소년합창단 공연까지 모두 즐기려면 하루도 빠듯하다. 따라서 아침 첫차를 타고 몬세라트로 가는 일정을 추천한다.

 

케이블카에서 본 몬세라트 암봉.
케이블카에서 본 몬세라트 암봉.
몬세라트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풍경.
몬세라트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 풍경.

노란색 팔각형으로 꾸민 예쁜 케이블카가 빠른 속도로 고도를 높이자 환상적인 풍경을 펼쳐낸다.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수도원(해발고도 약 720m)과 그 뒤로 병풍처럼 둘러선 몬세라트의 기암괴석은 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처럼 몽환적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 산 제로니(Sant Jeroni)는 1236m에 달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수도원이 지붕처럼 이고 있는 암봉들이 더 또렷하다. 입구 벽에는 용을 무찌른 전설이 담긴 카탈루냐 수호 성인 산 조르디(San Jordi)가 새겨져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서쪽 수난의 파사드를 총괄한 주제프 마리아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 작품이다. 각진 얼굴 부위가 음각으로 파여 관찰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조각상을 바라보면 산 조르디의 눈동자가 마치 나를 계속 따라오며 응시하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산 조르디.
산 조르디.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절벽 끝에 선 수도원 건물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이런 험난한 산꼭대기에 지은 수도원이라.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수도원으로 들어서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스쳐 지나가며 잠깐 볼 수 있는데도 방문객들이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검은 성모상 때문이다. 수도원 역사에 오래전 얘기가 기록돼 있다. 880년쯤 목동이 산속 동굴(산타 코바·Santa Cova)에서 들려오는 신비한 노래와 빛을 따라갔다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검은 성모상을 발견했다. 목동은 이 성모상을 옮기려 했으나 마치 돌처럼 무거워 움직이지 않았고, 이를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그 자리에 작은 성당들을 짓기 시작했다.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그러다 1025년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설립됐고, 검은 성모상의 존재가 알려지면 12세기부터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들 몰려들었다. 1811~1812년 나폴레옹 군대의 약탈로 수도원이 완전히 파괴됐지만 수도사들은 검은 성모상을 미리 숨겨 지켜냈다. 이런 고난의 역사와 구약성서 아가서에 나오는 문구 “나는 검다. 그러나 아름답다. 예루살렘의 딸들아…”가 합쳐지면서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 독재정권에서 정치·문화적으로 탄압받던 카탈루냐 사람에게 검은 성모상은 어떤 시련에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 됐다.

 

몬세라트 수도원.
몬세라트 수도원.
검은 성모상.
검은 성모상.

검은 성모상은 바실리카 중앙 제단 뒤편 높은 ‘성모의 방’에 안치돼 있다. 유리보호막을 설치했지만 오른손만 보호막 밖으로 나와 있어 방문객들이 이를 만지며 기도할 수 있다. 손에 들고 있는 구체는 검은 성모가 세상을 보살피고 중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원래 성모상은 검지 않았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든 목조 성모상은 나무 위에 석고를 바르고 안료와 니스를 칠했는데 수백년 동안 촛불의 그을음과 니스의 산화, 습기·공기 노출로 검은색으로 변했다.

 

전망대 오르는 산 조안 푸니쿨라.
전망대 오르는 산 조안 푸니쿨라.
해발고도 1000m 전망대에서 본 풍경.
해발고도 1000m 전망대에서 본 풍경.
몬세라트 해발고도 1000m 전망대 트레킹 코스 풍경.
몬세라트 해발고도 1000m 전망대 트레킹 코스 풍경.

◆몬세라트 절경 즐기는 트레킹

 

몬세라트는 트레킹 코스가 다양하며 산 미켈 십자가 전망대와 검은 성모상이 발견된 산타 코바는 꼭 가야 한다. 지도에서 보면 두 곳이 바로 붙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는 절벽 위와 아래여서 직접 연결된 길은 없고, 어느 곳을 먼저 가든지 수도원으로 되돌아온 뒤 다시 가야 한다. 특히 오후 1시부터 15분 동안 진행되는 소년합창단 에스콜라니아(Escolania) 공연을 보려면 오전과 오후로 나눠 코스를 짜야 한다. 산 조안 푸니쿨라를 타고 해발고도 1000m 전망대에 오른 뒤 하산길에 산 미켈 전망대를 찾으면 웅장한 몬세라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수도원에서 산 미켈 십자가 전망대로 바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있으며 왕복 약 30분 걸린다.

 

몬세라트 트레킹.
몬세라트 트레킹.
산 미켈 십자가 전망대.
산 미켈 십자가 전망대.
산 미켈 십자가.
산 미켈 십자가.

푸니쿨라로 전망대에 오르자 손에 닿을 듯 가까운 거대한 암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감탄이 쏟아진다. 수도원 건물은 바로 앞에서 본 것보다 더 아찔하게 매달려 있다. 전망대에서 가장 높은 산 제로니 정상까지 트레킹 코스가 있지만, 왕복 3시간 거리여서 도전하기 쉽지 않다. 끝없이 펼쳐지는 암봉을 감상하며 1시간여 걸어 내려가자 산 미켈 전망대 절벽 끝에 선 높이 3.5m 철 십자가 눈길을 사로잡고, 그 너머로 수도원과 암봉이 어우러지는 절경이 펼쳐진다. 철 십자가는 가우디 건축철학의 계승자 조제프 마리아 주졸(Josep Maria Jujol i Gibert)이 1910~1911년 완성한 작품이다. 몬세라트 전경을 가장 근사하게 담을 수 있는 곳이지만 몸이 날아갈 듯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라 단단히 챙겨 입고 가야 한다.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 공연.
에스콜라니아 소년합창단 공연.
소년합창단 뒤로 보이는 검은 성모상.
소년합창단 뒤로 보이는 검은 성모상.

볼거리가 많아 여유를 부리다 보니 오후 1시가 임박했다. 부랴부랴 내리막길 달려 수도원에 들어서자 소년합창단 공연이 막 시작됐다. 유료 공연이며 앉아서 감상하려면 20~3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입장해야 한다. 에스콜라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학교이자 소년합창단. 정확한 창설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1307년 문헌에 처음 등장하니 최소 700년이 넘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경건하고 고풍스러운 수도원 내부 풍경과 어우러지는 천상의 하모니가 눈물이 날 듯, 뭉클한 감동을 가슴에 안긴다. 월~금 오후 1시에 공연하며 토요일과 방학기간에는 쉰다. 일요일 오전 11시 미사가 끝날 무렵과 오후 6시45분 저녁기도 시간에도 합창단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로사리오의 기도의 길 수도사 조각.
로사리오의 기도의 길 수도사 조각.
로사리오 기도의 길.
로사리오 기도의 길.
로사리오 기도의 길.
로사리오 기도의 길.

◆가우디 작품 만나는 산타 코바

 

머릿속에 계속 떠 다니는 합창단 선율을 흥얼거리며 몬세라트의 마지막 여정, 산타 코바로 향한다. 이곳을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몬세라트의 유일한 가우디 작품 ‘승천하는 예수’ 조각상이 길 마지막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원래 수도원에서 절벽 아래로 이동하는 산타 코바 푸니쿨라가 있지만 안전점검 때문에 운행하지 않을 때가 많으며 걸어가도 큰 차이가 없다. 검은 성모상이 발견된 동굴, 산타 코바로 이어지는 길은 가톨릭의 ‘로사리오 기도의 길’로 꾸며 15가지 신비를 형상화한 조각작품들을 만난다. 1896~1916년 사이에 조성됐고 예수의 탄생과 유년기를 담은 환희의 신비,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표현한 고통의 신비,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그린 영광의 신비 각 5개 작품으로 구성됐다.

 

로사리오 기도의 길.
로사리오 기도의 길.
로사리오 기도의 길.
로사리오 기도의 길.

여러 작품과 몬세라트 기암괴석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30여분을 걸어 길 막바지에 닿자 드디어 가우디 작품, 첫 번째 신비 ‘예수의 부활’이 등장한다. 인위적 구조물을 최소화하려고 산의 암벽을 직접 깎아 무덤 동굴을 만들었다. 인간의 작품이 자연경관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는 가우디의 건축철학이 잘 느껴진다. 동굴 위쪽 벽에는 부활한 예수의 황동조각이 설치됐고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이는 가우디의 트랜카디스 기법으로 만든 카탈루나 문장도 새겼다.

 

가우디 작품 '승천하는 예수'
가우디 작품 '승천하는 예수'

 

 

산타 코바.
산타 코바.

무덤 앞에는 천사와 세명의 마리아 조각상이 놓였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설계를 구상할 때 이 길을 오가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막다른 길에서 마주치는 산타 코바로 들어서자 검은 성모상이 있던 동굴이 그대로다. 검은 성모가 떠난 빈 동굴은 역설적이지만 더 큰 울림을 준다. 형상은 사라졌지만 천년 넘게 켜켜이 쌓인 기도는 동굴 바위틈마다 깊게 박혀 마음이 고달픈 이들의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