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리모컨부터 찾는 저녁. 몸은 편안한 휴식을 누리는 것 같지만,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는 사이 뇌는 조용히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뻔한 잔소리가 아니다. 데이터가 증명하는 명확한 경고다. 이 익숙한 궤도에서 딱 1시간만 벗어나 보자. 그 작은 결심이 중년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가장 튼튼한 동아줄이 된다.
◆우울증 43% 낮춘 ‘1시간의 마법’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유럽정신의학회 학술지 ‘유러피안 사이키아트리’ 최신호에 실린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연구팀의 논문은 ‘시간의 재배치’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보여준다. 연구팀은 우울증이 없던 성인 6만5454명을 4년간 추적 관찰했다.
결과는 놀랍다. TV 시청 60분을 다른 활동으로 바꾸면 전체 참가자의 우울증 발생 가능성이 11% 줄었다.
특히 40~65세 중년층의 변화가 극적이다. 하루 1시간을 대체하면 우울증 위험이 19% 감소했고, 2시간을 바꾸면 무려 43%나 떨어졌다.
단순히 몸을 움직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대체 활동 중 우울증을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방패는 ‘스포츠’였다.
TV 시청 30분을 스포츠로 바꾸면 우울증 위험이 18% 낮아졌다.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신체활동(10%), 수면(9%)도 긍정적이었지만, 밀린 설거지나 청소 등 가사 노동을 하는 것은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
◆하루 8시간 앉아있는 한국인, 내 건강은?
이 연구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한국인의 팍팍한 삶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성인은 하루 평균 8시간 이상을 앉아서 보낸다. 특히 4050 세대는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에 짓눌려 신체 활동량이 바닥을 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최근 1년간 3~4%가 우울장애를 겪었고, 이들 연령대는 국내 자살 사망자 수 1·2위를 다툴 정도로 위태롭다.
이제 좌식 생활은 단순한 게으름의 차원을 넘어, 중년의 생명줄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공중보건의 위협을 뜻한다.
◆오늘 저녁, 당신의 선택은?
수백만원이 드는 심리 치료나 값비싼 항우울제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핵심은 퇴근 후의 1시간이다. 당장 리모컨을 내려놓고 운동화 끈을 묶어보자.
동네를 한 바퀴 걷거나 30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돈 한 푼 들지 않는 이 소박한 선택이 내일의 기분, 나아가 남은 인생의 건강을 결정짓는다.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약물치료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일상의 재배치”라고 단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