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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교수 “재판소원, 조선시대 ‘소송 지옥’ 재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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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재판소원’ 도입 논의와 관련해 현직 사법연수원 교수가 “조선시대 ‘소송지옥’을 재현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인 모성준(사법연수원 32기) 부장판사는 전날 법원 내부 게시판 ‘코트넷’에 ‘재판소원 논의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대법원 전경. 대법원 제공
대법원 전경. 대법원 제공

모 부장판사는 “조선시대 법정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번잡하고 혼란스러웠다”며 “당시에는 중앙의 형조, 호조, 한성부뿐만 아니라 각 도의 관찰사, 각 고을의 수령이 재판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관할의 경계가 모호해 백성들이 이 관청, 저 관청을 돌며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백성들이 재판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문화에 더해서 관청 간의 자존심 싸움과 상급 기관의 개입이 빈번해지면서, 판결이 확정되지 못하고 겉도는 재판의 장기화가 심화됐고, 이는 정작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중요 분쟁들을 뒷전으로 밀어냈다”고 지적했다.

 

모 부장판사는 재판소원에 대해 “현재 논의는 재판의 설득력과 승복율을 높이는 방안보다는 사법권을 보유한 법원을 외부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통제 하겠다는 ‘권력 구조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며 “겉으로는 국민 기본권 구제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재판에 승복하지 못하는 당사자들에게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둠으로써 조선시대의 ‘거듭된 송사’와 ‘불복’의 역사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현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모 부장판사는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혹시나 하며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행렬이 이어진다면 무조건 불복하는 풍조를 부추기고 막대한 변호사 비용과 행정력을 낭비하게 만들 것”이라며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약화되면서 분쟁은 결코 종결되지 않는 영구적 갈등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진정한 사법 개혁은 헌법 규정을 우회하는 기이한 심급 구조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실심에 전폭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재판의 완결성과 설득력을 높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모 부장판사가 코트넷에 올린 글 전문

 

<재판소원 논의에 대한 단상>

 

1. 조선시대의 ‘결코 끝나지 않는 재판’

 

조선시대 법정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번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당시에는 중앙의 형조, 호조, 한성부뿐만 아니라 각 도의 관찰사, 각 고을의 수령이 재판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관할의 경계가 모호하여 백성들이 이 관청, 저 관청을 돌며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지방 수령이 교체될 때마다 이전 재판에서 패소한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건을 다시 들고 나오는 ‘재판의 무한 불복’은 고질적인 사회 문제였다.

 

백성들이 재판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문화에 더해서 관청간의 자존심 싸움과 상급 기관의 개입이 빈번해지면서, 판결이 확정되지 못하고 겉도는 재판의 장기화가 심화되었고, 이는 정작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중요 분쟁 들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수령들은 밀려드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민사 사건임에도 곤장을 가해 억지로 종결지으려 했고, 임금은 재판 횟수를 제 한하는 법령을 거듭 선포했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에서 승소 가능성이 없는 사건도 한없이 불복하는 풍토와 재판 지연을 비판하면서 ‘송사가 지체될수록 백성들이 농사지을 시기를 놓치고 소송 비용으로 가산을 탕진한다’며 탄식했다. 이익은 소송의 남발로 서로를 고발하고 위증하는 풍조가 만연한 현상을 ‘국가를 망치는 좀’으로 규정하고, 박제가 또한 백성들이 명당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송사에 집착하는 세태와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제도적 미비를 통렬히 비판했다. 누구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소송 지옥’이었던 조선은, 사법자원의 한계와 불복의 일상화가 결합했을 때 사법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생생히 증거하고 있다.

 

2. 헌법재판소의 4심 재판: ‘재판의 무한 루프’

 

작금의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 역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수사와 재판의 지연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당사자들과 변호인 들은 하염없이 늦어지는 선고 날짜에 절규하고 있으며, 사실심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시켜 분쟁을 조기에 종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논의되고 있는 ‘재판소원’의 도입, 즉 헌법재판소에 사실상 4심 법원의 권한을 부여하려는 법률안은 재판지연 문제를 극도로 악화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조선이 모든 중앙 관청의 판결에 승복하지 못할 경우, 백성들이 임금의 행차 때 꽹과리를 치는 ‘격쟁(擊錚)’이나 글을 올리는 ‘상언(上言)’을 통해서 공식적인 재판 절차를 무력화하고 사법적 판단 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수단을 부여한 결과, 소송불복과 재판지연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재판소원 논의는 겉으로는 국민의 기본권 구제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재판에 승복하지 못하는 당사자들에게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둠으로써, 조선시대의 ‘거듭된 송사’와 ‘불복’의 역사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현하게 될 것이다.

 

3. 재판소원의 예정된 미래: 사법시스템의 마비와 신뢰의 붕괴

 

한정된 사법 자원 내에서 재판의 심급 구조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국가의 핵심 책무다. 그러나 현재 논의는 재판의 설득력과 승복율을 높이는 방안보다는 사법권을 보유한 법원을 외부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통제하겠다는 ‘권력 구조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

 

이러한 접근에서 비롯된 재판소원이 전면 도입된다면 사회적 비용의 폭증과 사법시스템의 마비를 초래할 것이다. 특히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혹시나 하며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행렬이 이어진다면, 무조건 불복하는 풍조를 부추기고, 막대한 변호사 비용과 행정력을 낭비하게 만들 것이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헌법재판소 출신 전관 변호사가 ‘특수’를 누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법률신문 2026. 2. 14.자 기사).

 

이미 과부하 상태인 사법 체계에 헌법이 예정한 바 없던 또 하나의 심급을 얹는 것은 전체 사법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다.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약화되면서 분쟁은 결코 종결되지 않는 ‘영구적 갈등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최고 법원의 판결이 또 다른 기관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는 가능성은 국민들에게 ‘대법원의 재판 또한 뒤집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때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는 정치적 공방과 무한 투쟁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4. ‘결코 끝나지 않는 재판’을 해결한 유일한 방법

 

헌법재판소를 사실상의 최고법원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는 현재 사법시스템의 병증을 치유하기는커녕, 병증을 극단적으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조선왕조 600년간 수령들이 곤장으로 사건을 털어내려 했던 고육지책이 현대의 ‘재판 지연’과 ‘부실 심리’의 형태로 재연될 것임은 너무나 명백하다.

 

조선시대에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끝나지 않는 재판’을 종식시켰던 방법은 다름 아닌 재판권한을 사법부에 집중시키고,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3심 체계를 완성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헌법 제정 당시부터 1987년 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제정권력과 헌법개정권력이 의도한 바였고, 이로써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과거 조상들의 삶을 힘들게 했던 ‘끝나지 않는 재판’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누가 누구를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실심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제대로 풀고 재판을 신속히 끝낼 것인가’이다. 진정한 사법 개혁은 헌법 규정을 우회하는 기이한 심급 구조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실심에 전폭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재판의 완결성과 설득력을 높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헌법에도 어긋날뿐 아니라 아무런 실익도 없고 국민들에게 고통만을 가중시키는 ‘소송 지옥’을 불러올 것이 뻔한 재판소원 입법 논의는 재고하고, 사법 시스템의 내실 있는 효율화를 위한 실질적 논의로 돌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