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향후 5년간 평균 668명 늘리는 ‘의대 증원’을 발표했지만, 의료계는 일주일 가까이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지난 의·정 갈등이 수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전면 투쟁에 나서기에는 명분과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통한 지역의사제 실시 과정에서 의과대학 교육 여건을 충분히 확충하는 등의 과제를 안았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14일 온라인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연 뒤 “정부가 젊은 의사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아버린 데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문을 배포했다.
특히 대전협은 이번 의대 증원을 결정한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청년 세대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규탄했다. 이들은 “보정심에는 현장을 책임질 ‘청년’과 ‘젊은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전협은 “대규모 임상실습을 소화할 여력이 없는 병원에서 양질의 의사 양성은 불가능하다”며 “정부는 탁상공론식 보고서 뒤에 숨지 말고, 교수, 전공의와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합동 실사단’을 구성해 현장의 처참한 실태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전협은 사직, 파업 등 집단행동 여부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보정심은 지난 10일 제7차 회의를 열고 서울 외 지역 32개 의대를 대상으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간 평균 668명 늘려 총 3342명이 증원하기로 결정했다. 교육 현장 부담 완화를 위해 2027년 490명을 시작으로 증원 규모를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부 발표 이후에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지만, 집단행동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이다. 지난 윤석열정부 당시 ‘2000명 증원’에 저항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집단으로 사직∙휴직하는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 2024년 2월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은 지난해 9월 수련병원 현장으로 복귀했고, 학교를 떠났던 의대생들도 비슷한 시기 돌아왔다. 이들이 이제 병원 업무에 적응하고,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이탈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 모두 “투쟁할 명분이 부족하다”며 “교육∙실습 여건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각 직역 등의 여론을 파악한 뒤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설 연휴 이후까지 여러 회의체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향후 행동 방향을 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과거처럼 집단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대 증원분 모두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는 지역의사제로 별도 선발하는 점, 추계 결과보다 증원 규모가 축소된 점, 열악한 의대 교육 여건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증원되는 점 등 의료계가 강력히 대응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수련병원으로 복귀한 한 전공의는 “1년 반이라는 긴 투쟁 시간 동안 상처받은 전공의와 학생들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다시 투쟁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의대생들도 “투쟁할 명분이 부족하다”며 “정부는 교육·실습 여건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의료계가 당장 투쟁에 숨 고르기를 하는 가운데, 정부의 향후 과제도 적지 않다. 이번 의대 증원 발표를 두고 의료계와 시민∙환자단체에서 모두 아쉬움을 표하는 만큼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며 후속 보완책을 마련하며 신뢰를 쌓는 게 급선무다. 환자단체는 “정부가 의료계의 눈치를 봤다”며 의대 증원분이 충분치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역∙필수∙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늘어나는 의사 인력을 마중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의료진 의료 사고 부담 완화와 응급실 뺑뺑이 문제 등의 과제도 남았다. 국립대병원 역할 강화를 위한 대책,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의대 교육 여건 강화 등 당장 해결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이미 의대 교육 현장에서는 24·25학번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더블링’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공공의대 및 지역 신설의대 설립 추진도 의료계와의 갈등을 증폭시킬 변수로 남아있다. 정부는 2030년부터 공공의대(공공의학전문대학원)와 지역 신설의대 설립을 통해 2034∼2037년 600명의 의사를 배출할 계획이다. 의협은 15년간 지역 의무복무를 강제하는 공공의대에 대해서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비판하고, 신설의대에 관해서도 “기존 의대의 인프라 확충이 우선”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향후 설립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충분한 대화와 준비를 통해 의료계를 설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의사제를 비롯해 공공의대∙지역 의대 신설까지 단순 형식이 아닌 내실 있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재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