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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쟁부, 흥남 철수에 기여한 전쟁 영웅 75주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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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때 맹활약한 용사 다윈 카일
전후 재입대해 6·25 전쟁에도 참전
능력 인정받아 ‘부사관→장교’ 특진
중공군과의 교전 도중 안타깝게 전사
‘부하들 목숨 구했다’ 명예훈장 추서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가 6·25 전쟁에 참전해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다윈 카일(1918∼1951) 육군 소위의 75주기 기일을 맞아 홈페이지에 고인을 기리는 장문을 글을 게재했다. 원래 부사관이던 카일은 흥남철수작전 당시 인명 구조에 크게 기여해 특별히 장교로 임관한 인물이다.

 

미 육군의 2차대전 및 6·25 전쟁 참전용사인 다윈 카일(1918∼1951) 소위와 그에게 추서된 명예훈장. SNS 캡처
미 육군의 2차대전 및 6·25 전쟁 참전용사인 다윈 카일(1918∼1951) 소위와 그에게 추서된 명예훈장. SNS 캡처

16일(현지시간) 미 전쟁부에 따르면 카일은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6월 켄터키주(州) 젠킨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웨스트버지니아주 라신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고교까지 다녔다. 카일은 유럽 대륙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진 직후인 1939년 11월 육군에 병사로 입대했다. 이후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2차대전에 뛰어들며 카일은 유럽 전선으로 파병됐다.

 

그는 프랑스, 독일 일대에서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용감히 싸웠다. 독일군의 포격으로 망가진 아군 전차(탱크)에 타고 있던 승무원들의 생명을 구한 공로로 은성무공훈장(Silver Star)을 받기도 했다.

 

2차대전 종전 이후인 1945년 8월 집으로 돌아간 카일은 결혼하고 딸 둘을 낳으며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민간인 생활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는지 1947년 7월 육군에 재입대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그는 미 군정 치하의 한국에서 미 제6보병사단 소속으로 복무함으로써 6·25 전쟁 발발 전에 이미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50년 전쟁 개전 후 미 제3보병사단 소속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은 카일은 그해 말 흥남철수작전에 투입됐다. 중공군 개입 후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이 더 이상의 북진을 포기하고 동해안의 흥남 부두를 통해 남한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다친 군인들, 그리고 남한으로 가길 원하는 피난민들을 신속히 대피시키는 과정에서 카일은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이듬해인 1951년 1월 카일은 그를 눈여겨 본 지휘부의 결단으로 특별히 장교로 임관하며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이는 미군에서 ‘전장 임관’(battlefield commission)으로 불리는 제도인데, 지휘관의 전사 또는 부상이 다반사인 전쟁터에서 초급 지휘관의 신속한 충원을 가능케 한다.

 

6·25 전쟁 도중인 1951년 1월 특별히 미 육군 장교로 임관한 다윈 카일 소위(오른쪽)에게 상관이 새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미 육군 홈페이지
6·25 전쟁 도중인 1951년 1월 특별히 미 육군 장교로 임관한 다윈 카일 소위(오른쪽)에게 상관이 새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미 육군 홈페이지

같은 해 2월16일 카일은 소대장으로서 소대원들을 이끌고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에 맞서 카일이 선두에 서서 소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며 부하들을 독려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에 카일은 혼자서 여러 명의 중공군을 해치우며 부하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시간을 벌었다. 카일은 적의 기관총 난사에 끝내 목숨을 잃었으나, 그로 인해 많은 소대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카일의 나이 32세였다.

 

미국으로 송환된 카일의 유해는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어느 묘지에 묻혔다. 이듬해인 1952년 1월 카일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 추서됐다. 이는 미국에서 군인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에 해당한다. 고인을 대신해 부인과 두 딸이 훈장을 받았다.

 

고인을 기리고자 주한미군은 경기 의정부의 한 기지를 ‘캠프 카일’로 명명했다. 미 육군의 정비 부대가 주둔했던 이 기지는 2005년 폐쇄됐다. 이후 2024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복무하는 주한미군 장병 및 그 가족들을 위한 아파트 3개동이 신축되며 그들 가운데 한 곳에 카일의이름이 헌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