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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2명 중 1명 비만인데”…‘무심코 먹은’ 올리브유, 지방세포 스위치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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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산 과잉 섭취가 부른 비극…지방세포 생성 제어하는 단백질 기능 저하
“좋은 기름은 살 안 쪄” 무의식적 과식 경계…전문가들 “적정량 미학 필수”
16% 육박하는 당뇨 유병률…식단 구성만큼 중요한 ‘총열량 관리’의 실체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샐러드 전문점. 직장인 김모(38) 씨는 익숙한 듯 배식대에 놓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병을 집어 들었다. 이미 소스가 뿌려진 채소 위로 황금빛 액체가 세 바퀴 넘게 휘감긴다. “동물성 지방은 피하려 노력해요. 올리브유는 혈관에도 좋고 많이 먹어도 살이 덜 찐다고 하니까, 이 정도는 건강한 사치죠.” 김씨가 만족스럽게 포크를 들며 덧붙였다.

 

무심코 샐러드에 듬뿍 붓는 올리브유 한 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하루 권장 열량을 채운다. 전문가들은 건강식일수록 ‘적정량’의 미학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freepik
무심코 샐러드에 듬뿍 붓는 올리브유 한 큰술은 생각보다 빠르게 하루 권장 열량을 채운다. 전문가들은 건강식일수록 ‘적정량’의 미학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freepik

우리 식탁의 풍경이 변했다. ‘지방’을 죄악시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어떤 기름을 먹느냐가 건강의 척도가 됐다. 샐러드 볼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올리브유, 식전 빵을 듬뿍 적시는 오일의 향연 뒤에는 “몸에 좋은 기름이니 괜찮을 것”이라는 견고한 믿음이 자리한다.

 

하지만 이 과감한 한 큰술이 오히려 내 몸속 지방세포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면 어떨까. 한국 성인 남성 2명 중 1명이 비만인 시대, 우리가 맹신해 온 건강식의 주인공이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건강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액체 지방’의 역습을 이제는 마주해야 할 때다.

 

황금빛 액체의 역습: 올리브유의 두 얼굴.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황금빛 액체의 역습: 올리브유의 두 얼굴.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국내 성인 남성 절반이 ‘비만’…전 세계는 10억명 돌파

 

질병관리청의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비만율(BMI 25 이상)은 38.4%에 달한다. 특히 남성은 49.8%로, 사실상 두 명 중 한 명이 비만 상태다. 단순한 체형 문제를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수치다. 비만이 촉발한 인슐린 저항성은 제2형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진다.

 

국가데이터처 사망원인통계(2023년)에 따르면 심장질환 3만 3000여명, 뇌혈관질환 2만 2000여명이 사망해 두 질환 합계가 5만 5000명 수준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2022년 기준 전 세계 비만 인구가 10억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과학계가 내놓은 연구 결과는 우리의 식탁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미국 오클라호마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등 공동 연구진은 쥐 실험을 통해 올리브유, 코코넛유, 라드 등 지방산 구성이 다른 여러 식단을 비교했다.

 

그 결과, 올리브유의 주성분인 ‘올레산’을 과잉 섭취한 집단에서 지방세포 생성에 관여하는 AKT2 단백질 활성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반면 이를 억제하는 LXR 단백질 활성은 감소했다. 지방세포를 만드는 가속 페달은 더 세게 밟히고, 통제할 브레이크는 망가진 것이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Cell Reports)’ 최신호에 게재됐다.

 

공동 교신저자인 마이클 루돌프 교수는 “지방세포는 군대와 같다. 초기에는 초과 영양분을 저장할 병력이 늘어나지만, 에너지가 계속 과잉 공급되면 통제 불가능한 축적이 시작된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올레산 과잉 섭취가 지방세포 생성 관련 신호를 강화하는 경향을 관찰했다고 밝혔다.

 

◆올리브유는 정말 나쁜 기름일까

 

당장 주방에서 올리브유를 치워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다. 연구진도 이번 결과가 ‘과잉 섭취’와 ‘장기간 고지방 환경’을 전제로 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올리브유 자체를 유해 식품으로 낙인찍을 이유는 없다.

 

실제로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진이 ‘미국의학회지(JAMA Network Open)’에 발표한 대규모 코호트 연구를 보면, 하루 7g 이상 올리브오일을 섭취한 그룹은 전혀 먹지 않은 그룹에 비해 치매 관련 사망 위험이 28% 낮았다.

 

올레산 과잉 섭취는 지방세포를 만드는 신호는 강화하고, 이를 억제하는 단백질은 약화시킨다. freepik
올레산 과잉 섭취는 지방세포를 만드는 신호는 강화하고, 이를 억제하는 단백질은 약화시킨다. freepik

고위험군 성인을 약 5년간 추적한 스페인의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PREDIMED)에서도 지중해식 식단을 따른 집단의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 위험이 약 30% 낮게 나타났다.

 

문제는 ‘종류’가 아니라 ‘총량’이다. 지방은 1g당 9kcal로 탄수화물이나 단백질(4kcal)보다 두 배 이상 열량이 높다. 제아무리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불리는 기름이라도 몸에 들이붓는 순간 열량 초과로 직결된다. 특히 국내 식단 특성상 나물 무침 등 알게 모르게 섭취하는 참기름, 들기름의 양도 적지 않다. 여기에 올리브유까지 무제한으로 더해지면 보이지 않는 에너지 과잉 상태에 빠지기 십상이다.

 

◆건강식의 함정, ‘많이 먹어도 괜찮다’는 착각

 

“몸에 좋은 거니까.” 건강식이라는 타이틀은 종종 우리의 섭취량 제어 장치를 무너뜨린다. 샐러드에 듬뿍 두르고, 빵에 찍어 먹다 보면 하루 권장 열량을 훌쩍 넘긴다. 지중해식 식단이 건강한 진짜 이유는 올리브유 단일 성분이 아니라, 채소와 통곡물 중심의 식단 구조와 적정한 열량 유지에 있다.

 

좋은 지방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음식도 ‘무제한 허용’의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오늘 저녁 식탁 위, 무심코 기울인 올리브유 병을 멈추고 적정량을 계량해 보는 건 어떨까.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한 스푼의 덜어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샐러드 접시 위로 떨어지는 마지막 기름 한 방울, 그 미세한 양의 조절이 내 몸을 살리는 진짜 브레이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