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현듯 신선하고 기계적인 축사를 들었던 날은 작년 7월 어느 저녁이었다. 그날 서울 정동길에 있는 회관에서 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는데, 그 행사를 주관하는 문예지 발행인이자 시인인 분이 단상에 올라 축사가 적힌 종이를 펼쳤다. 그는 객석을 향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축하의 말을 직접 쓰려다가 실험 삼아 AI에게 몇 가지 프롬프트를 주고 써보라고 시켰습니다.”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술렁거리며 발행인의 축사에 귀를 기울였다. 비인간이 쓴 축사 내용은 보편적 형식에 부합했다. 다음 차례로 단상에 오른 문학평론가가 발끈하며 말했다. “아, 이게 뭡니까! 총장이나 기관장 같은 직책의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인사말을 쓰지 않는다고들 해도, 시인들이 모인 시상식에서까지 AI가 쓴 글을 읽는 건 아무래도…” 나는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가 흥미로웠다. 그렇게 문제의식 던지는 해프닝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AI에 관한 논의가 뜨겁다. 그야말로 AI 시대다. 내가 출강하는 대학교도 이번 학기부터 강의계획서에 ‘생성형 AI 도구 활용 방침’이 필수 기재 사항으로 추가되었다. 강의에서 생성형 AI의 활용이 가능한지, 생성형 AI를 학습 보조도구로 활용할지,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진행할지 명시해야 했다. 한참 동안 나는 고민했다. 학생들에게 과제 수행 시 AI를 활용하도록 하고 사용도구명, 사용 과정 및 생성 내용 등을 과제에 명시하도록 할까? 그러다가 작년에 과제물 성적 처리에 골머리 썩였던 기억이 떠올라 결국 AI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창작 교과목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로 한 것이다.
설 연휴 맞아 일본으로 여행 간 친구가 보내온 사진을 본다. 그녀는 여행 계획을 AI가 짜줬다고 했다.
여행이란
길을 잃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여행이란
나를 잊는 것이다
나를 잊고 떠돌다가
어느 낯선 곳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은 ‘여행’으로 시아(SIA)라는 인공지능이 썼다. 기계가 만들었다는 선입견 없이 읽는다면, 구절구절 공감하며 철학적인 통찰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포리즘은 기시감이 크지 않은가? 어디선가 들었던 간결한 말들이 아닌가? 이 시에는 길 잃기를 강조한 레베카 솔닛의 말과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프루스트의 말과 실존주의자 하이데거의 문장도 뒤섞여 있는 것 같다. ‘여행’, ‘자아’, ‘길’과 관련된 엄청난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인간이 쌓아온 문학과 철학 등 인문학적 유산을 시적인 언어로 재출력해 낼 수 있다. 인간이 밤새워 쓴 시보다 AI가 확률적 조합으로 단숨에 완성한 시가 더 그럴싸해 보일 수 있다.
이런 사정으로 ‘AI 판별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신춘문예와 같은 공모전에 투고한 작품을 두고도 표절 여부, AI가 쓰거나 AI와 공동창작한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이 제기되곤 한다.
시 쓰는 AI가 국내에 등장한 건 챗GPT가 나왔던 2022년 일이다. 거의 모든 장르에 예술을 하는 AI가 있다. 이것을 활용하든 안 하든 그것은 예술가의 선택이자 취향, 각자의 윤리일 것이다. 모두가 한꺼번에 AI가 필요불가결하다고 부르짖어도 오롯이 자기 육체와 영혼만으로 창작하는 영토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AI의 시가 설령 나의 시를 능가한다고 해도 나는 AI로부터 자유롭게 창작할 것이다. 무엇의 간섭이나 도움도, 누구의 지침도 필요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고독할 권리와 창작의 고통을 뭐 하러 AI와 나누겠는가? 예술의 길에 무슨 부귀영화가 있다고! 시인이라는 운명은 영원히 AI가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김이듬 시인·서울대학교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