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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시행 못한 2025 여성폭력방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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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 예방책을 찾고 싶은데 현재 정부, 법조계, 법학계는 급격한 변화를 싫어합니다.”

이달 11일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표창원 프로파일러는 교제폭력 관련 현행법에 아쉬움을 표했다.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폭력은 늘어가는데 관련 제도는 좀처럼 변할 기미가 안 보여 의문이 생기던 중에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이지민 사회부 기자
이지민 사회부 기자

안 그래도 지난해 7월 성평등가족부(당시 여성가족부)는 ‘2025 여성폭력방지정책 시행계획’에서 연내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범위를 규정한 여성폭력방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눈길을 끌었던 건 ‘2025년’이라고 못 박은 시한이었다. 10년 가까이 국회에서 발의되고 폐기되기를 반복한 관계 기반 폭력 규정 문제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일었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안 마련은 없던 일이 됐다. 대신 지난해 9월 교제폭력 피해자를 스토킹 피해자와 같이 보호대상에 포함하도록 하는 스토킹방지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여성계와 전문가들은 이 방안은 최선이 아니라고 본다.

강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석대로라면 가정폭력방지법을 개정하는 게 맞다고 했다. 그는 “영국 등 해외에서도 가정폭력방지법에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폭력이 포괄되는데 한국의 경우 입법 목적을 바꾸기 쉽지 않은 어려움을 성평등부가 고려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방지법과 함께 가정폭력처벌법도 개정돼야 하는데 처벌법의 목적 조항에는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라고 돼 있다. 법의 목적이 피해자 보호가 아닌 가정 보호인 셈이다. 친밀한 관계를 이 법 안에 규정하려면 이러한 조항을 바꿔야 한다. 종교계 등에서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에 더해 방지법은 성평등부 소관이지만 처벌법은 법무부 소관이다. 강 연구위원은 “법무부는 목적 조항까지 바꾸는 것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스토킹방지법 안에서 친밀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폭력을 규율하려면 법무부 소관인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함께 논의돼야 하지만 국회에서는 진전이 없다. 성평등부 관계자는 “처벌법에 따른 방지법으로, 처벌법이 먼저 논의되는 게 순서상 맞다”고 했다.

결국 오늘까지 이어진 입법 공백은 성평등부와 법무부 간 시급성에 관한 온도 차이, 국회의 방치가 맞물린 결과다. 여성폭력방지정책 시행계획을 만들어 놓고도 전문가 의견을 듣는 데 그친 성평등부 역시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교제폭력을 규율하는 법이 없어 현재는 각각의 행위에 따른 형법을 적용해 처벌한다. 이 때문에 반의사불벌죄인 폭행죄일 때 피해자가 처벌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수사는 중단된다.

법의 부재 속에서 피해는 늘고 있다.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폭력이나 통제를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한 여성 비율은 2024년 19.2%였다. 2021년 16.1%에서 3.1%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정부에서 성평등부를 떠나 있다가 최근 다시 돌아온 한 고위 공무원은 “수년이 지났는데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업무에 적응하기 그만큼 쉬웠다는 의미로 선해(善解)했지만, 매듭지어야 할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아 씁쓸하다.

법 조항 하나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행계획에 적은 과제 한 줄을 무겁게 여겼다면 그 속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