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난 13일 국내 최초로 토큰증권(STO)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사업자 2곳을 승인했다. 한국거래소 컨소시엄(KDX)과 넥스트레이드 컨소시엄(NXT)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인허가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이 디지털 자산 시대로 본격 진입했음을 선언하는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앞서 금융위는 지난달 7일 증권선물위원회를 열어 총 3개 컨소시엄의 예비인가 신청 안건을 심의했었다. 그 결과 1위 NXT 컨소시엄과 2위 KDX 컨소시엄이 선정됐고, 부동산 조각투자 기업인 루센트블록은 탈락했다. 금융위는 자기자본과 인력, 물적 설비, 사업계획, 건전 경영 및 사회적 신용, 대주주, 이해 상충 방지체계 등에 걸쳐 1000점 만점의 심사 기준에 따라 평가를 진행했다. 원래 지난달 14일 정례회의에서 예비인가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루센트블록의 공정성 이의 제기로 한 차례 지연됐다가 기존 심사 기준 원칙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면서 이번 승인에 이르렀다. 금융위는 다만 루센트블록이 제기한 기술탈취 의혹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조사가 개시된다면 NXT 컨소시엄의 본인가 심사를 중단한다는 조건을 부과했다.
예비인가를 받은 두 컨소시엄은 6개월 내 조건을 이행하고 본인가를 신청해야 하며, 최종 승인을 받고 나서야 영업을 개시하게 된다. KDX 컨소시엄에는 키움증권·교보생명·카카오페이증권이 공동 최대주주로, 미래에셋·KB·한화투자증권 등 20여개 증권사와 바이셀스탠다드 등 STO 기업도 참여한다. NXT 컨소시엄은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를 중심으로 뮤직카우,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등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이 결합했다.
이번 장외거래소 사업자 선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다. 금융위가 2023년 2월 ‘STO 발행·유통 규율 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한 이래 3년에 걸친 입법·제도화 여정의 결실이다. 장기간에 걸친 논의는 지난달 15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STO 제도화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비로소 법적 기반을 완성했다.
이들 개정안의 핵심은 STO의 발행과 유통을 명확히 분리하고, 인가를 받은 조각투자 장외거래소를 통해서만 유통할 수 있도록 한데 있다. 이로써 부동산이나 미술품, 지식재산권(IP), 음원, 항공기 엔진 등 다양한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로 분할해 소액으로 거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완비됐다.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임대 수익이나 저작권료가 투자자의 디지털 지갑으로 자동 배분되는 구조도 현실화된다. ‘1만원으로 서울 강남 빌딩주가 되는 시대’가 단순한 수사가 아닌 법적 현실이 된 셈이다.
법안 통과 직후 한국핀테크산업협회 STO협의회장이자 바이셀스탠다드를 이끄는 신범준 대표는 “업계의 숙원이었던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민간 기업은 이미 기술적·제도적 준비를 마친 상태로 법 시행 즉시 시장 활성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2025년이 입법의 해였다면, 2026년은 국민이 혁신 금융을 체감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울러 금융위는 이달 중 STO협의체를 출범시켜 유통제도와 인가체계, 추가 인가 여부를 정비할 방침이다.
시장 전망은 더없이 밝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국내 STO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약 367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4.5%로 추정되는 수치로, 단일 신산업 분야로서는 이례적인 규모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신 대표는 “STO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 해결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성장 엔진”이라고 강조하며,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 점유율 5% 이상 확보와 아시아 선도국 지위 구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STO를 단순한 금융 신상품이 아닌 국가 전략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게 그의 주문이다.
이 같은 밝은 전망은 과거 인공지능(AI)이나 바이오, 반도체, 로봇 산업이 본격 제도화·산업화되던 초기 모습과 닮아있다. 반도체 산업은 정부의 전략적 육성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의 결합으로 수십년 만에 대한민국 최대 수출 산업으로 성장했고, 바이오·헬스케어가 ‘규제 샌드박스’와 인프라 정비를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듯이 STO 역시 이번 법제화와 장외거래소 출범을 기점으로 금융 분야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특히 STO가 여타 미래 핵심 산업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금융의 민주화’를 실현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신 대표는 “STO는 소액 분할투자를 통해 일반 투자자에게도 고가 부동산·IP·인프라 프로젝트 등 프리미엄 자산을 개방하는 혁신”이라며 “청년과 지방 투자자 등이 이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다양한 자산군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투자 민주화와 자산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 수익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 불평등 완화라는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지닌 발언으로 해석된다.
국내 STO 제도화가 막 완성 단계에 접어든 사이 전 세계 시장에서는 이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크립토 3법’ 및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프로젝트 크립토’ 추진을 통해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JP모건은 블록체인 기반 글로벌 결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고, 나스닥은 토큰화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승인을 SEC에 요청한 상태다.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미 달러 기반 디지털 유동성 펀드 ‘비들(BUIDL)’을 발행해 이미 시장 점유율 30%를 확보했으며, 골드만삭스 역시 대규모 토큰화 프로젝트에 나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스위스 증권거래소(SIX)가 디지털증권거래소(SDX)를 이미 운영 중이며, 싱가포르와 홍콩은 아시아 STO 허브 자리를 놓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일본 STO협회는 주요 금융기관 70여곳과 함께 제도 정비에 참여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고 있는 만큼 STO는 이미 글로벌 금융 인프라의 차세대 표준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는 평이다.
이재명정부가 123개 국정과제에 디지털 자산 규제 체계 마련과 블록체인 산업 지원 강화를 명시한 점, 코스피 6000 시대를 목표로 자본시장 활성화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점도 STO 산업화에 우호적인 정책 환경을 조성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장밋빛 전망 일색이어서는 안 된다. NXT 컨소시엄의 넥스트레이드와 루센트블록 사이의 기술탈취 의혹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두 기업이 비밀유지약정(NDA)을 맺은 관계라는 점에서 이 문제가 공정위 조사로 이어진다면 NXT의 본인가 심사가 장기간 중단될 수도 있다. 시장 참가자들의 신뢰 확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의 조속하고 투명한 해결이 절실하다.
STO법 공포 후 1년의 시행 유예기간도 고려해야 할 변수다. 법 시행 전까지 시장은 일정 부분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실제 투자자가 STO를 일상에서 체감하기까지는 행정적·기술적 과제가 아직 산적해 있다. 장외거래소 본인가, 결제·청산 인프라 구축, 투자자 보호 시행령 마련 등 남은 절차도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번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사업자 2곳 승인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AI가 데이터 산업을 재편하고, 반도체가 제조업의 패권을 좌우하며, 바이오가 의료의 미래를 바꿔놓듯, STO는 금융산업의 DNA를 근본부터 바꿀 기술·제도적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식과 채권으로 한정됐던 자본시장이 부동산, 예술, 음악, IP까지 아우르는 ‘초연결 자산 생태계’로 확장되는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미래에셋·한국투자·NH투자 등 주요 증권사는 이미 STO 컨소시엄을 통해 시스템 구축을 마친 채 ‘1호 STO’ 타이틀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STO법의 국회 통과 당시 정준호·전우종 대표가 이끄는 SK증권도 바이셀스탠다드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본격적인 시장 확장에 나서고 있다.
돌이켜보면 인터넷 뱅킹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이들은 활용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 뱅킹 없는 금융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모바일 주식 거래, 핀테크 간편 결제도 마찬가지였다. STO 역시 지금은 낯설고 복잡해 보이지만, 10년 후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부동산 지분을 사고팔며 매달 임대 수익을 자동으로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금융위의 이번 결단은 그 미래를 향한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을 열었다. STO가 AI, 바이오, 반도체, 로봇과 나란히 대한민국 미래 핵심 산업의 당당한 한 축을 담당하는 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 것으로 자신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현재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선임 사외이사, 금융감독원 옴부즈만,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