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말봉(金末峰)이 1961년 2월 9일 향년 60세로 별세했다는 단신이 2월 10일 몇몇 신문에 보도되었다. 여기서 그는 ‘찔레꽃’과 ‘푸른 날개’를 쓴 여류 소설가로 소개되었다. 이어서 1년 뒤에는 김말봉 묘비 건립 운동이 추진되어 묘비가 망우리묘지에 설치될 예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묘비 건립 자리에 최정희, 임옥인, 손소희, 한무숙, 조경희, 김경안, 박경리, 김일순 등 여류 작가들이 모였음을 보도하면서 “순수 귀신 그거 좀 내버려요. 대중소설을 써요”라고 말했던 고인의 말을 덧붙였다.
필자는 1976년 12월 고교입학고사라 할 연합고사를 마친 뒤 과외 아르바이트로 받은 용돈으로 청계천 고서점가에서 한국현대소설을 구입하여 탐독하였다.
이때 임옥인, 최정희, 강신재 등 여류 소설가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당시 이범선의 ‘오발탄’이라든가 장용학의 ‘요한시집’, 선우휘의 ‘불꽃’ 등 남류 소설가의 작품에서 감지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 묘사와 세태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고교 시절 입시에 대한 압박감에도 도서반원으로 활동하면서 도서관에서 장편소설 ‘찔레꽃’을 발견하고 여러 날에 걸쳐 읽었다. 아마도 현실 도피성 독서가 아닌가 싶다.
이때 ‘두취(頭取)’라는 용어를 사전에서 뒤지는 가운데 일제강점기 암흑같은 삶과 어울리지 않는 ‘전차’, ‘은행’, ‘대학’이라는 용어들에 내심 놀랐다. 이 시기 조선인들은 모두 헐벗고 살았으며 문명시설을 이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또한 이렇게 당대의 세태를 반영하며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소설이 왜 주목받지 않는가에 의아해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나 스탕달의 ‘적과 흑’이 필자의 눈에는 불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애정소설임에도 명작으로 꼽히고 있지 않은가.
김말봉이 늘 강조한 대로 우리 문단과 교육계가 순수소설과 대중소설, 본격소설과 통속소설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대중소설, 통속소설에 인색하여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오히려 순수소설과 본격소설의 작가들이 일제의 황민화 시책을 옹호하는 글들을 발표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반대로 ‘찔레꽃’을 읽다 보면, 시대정신이나 문학적 사명감을 포기한 소설이라고 질타한 임화의 주장과 달리 곳곳에 당시 차별과 고통을 당하는 조선인의 삶을 간간이 그리고 있다.
예컨대 고학력 조선인 학도마저 “두 끼씩이나 혹은 그 이상 굶고 퀭하니 들어간 눈으로 일자리를 얻으려 헤매는데 그것은 주로 조선사람이 더욱 그러했다”는 묘사가 그의 날카로운 세태 인식을 보여준다.
나아가 김말봉은 1945년 8월 해방 직후 공창(公娼) 폐지 운동에 앞장섰으며 사회적 빈곤이 여성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빈곤 여성들을 구호하는 희망원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순수와 통속의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을 향한 애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는 순수로 포장된 위선을 비판하며 스스로 휴머니즘의 실천에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순수한 마음은 1946년 ‘그네’라는 시에 잘 표현되었으며 그의 사위인 작곡가 금수현에 의해 ‘그네’라는 가곡으로 구현되었다. ‘그네’의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처럼 봄이 다가오는 계절에 독자들도 이 가곡을 부르며 창공을 차고 나아가길 빈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