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이자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이 당명 개정을 6·3 지방선거 이후로 미뤘다. ‘유권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정말 그 점 때문인지는 의문이다. 새로운 당 이름의 최종 후보는 ‘미래연대’와 ‘미래를 여는 공화당’ 두 가지로 압축됐다고 한다. 미래연대는 2020년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대표로 내세워 총선에 도전했다가 참패한 미래통합당을 연상시킨다. 미래를 여는 공화당은 앞의 ‘미래를 여는’에는 시선이 안 가고 뒤의 ‘공화당’에만 눈길이 쏠린다.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하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뒷받침한 공화당이 떠오른다. 국민의힘 당명 개정 연기는 최종 후보작 둘 다 마음에 안 든다는 당 지도부 의중이 반영된 조치 아닌가 싶다.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 정당의 명맥은 ‘민주정의당(민정당)→민주자유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이어진다. 이 가운데 가장 장수한 정당은 1997년 11월 출범해 2012년 2월까지 존속한 한나라당이다. 정당 문패가 수시로 바뀌던 시절 14년 넘게 존속했으니, 이 정도면 엄청난 생명력이란 평가를 들을 만하다. 한나라당 시절인 2008년에는 이명박(MB) 대통령, 새누리당으로 거듭난 직후인 2013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각각 배출했다. 상품에 비유하면 아주 성공적인 브랜드라고 할 ‘한나라당’은 누구 작품일까. 최초 제안자는 조순(1928∼2022) 전 서울시장이다. 그리고 이를 수용해 당명으로 확정한 이는 이회창(90) 전 국무총리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최대 주주가 김영삼(YS) 대통령이라면, 한나라당은 온전히 이회창의 정치 세력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DJ) 대통령에게 패한 뒤 한나라당에 대한 이회창의 장악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 오늘날 이회창 하면 ‘총리’보다 ‘한나라당 총재’가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보수 진영은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정계를 떠난 YS 대신 이회창을 DJ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의 대항마로 여겼다. 이름 마지막 글자인 ‘창’(昌)이란 애칭으로 더 유명했던 그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두 번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꿋꿋이 살아남아 훗날 MB·박근혜 두 보수 대통령을 배출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33년 전인 1993년 2월22일 YS가 당시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 후보자로 발탁했다. 이회창은 9년 가까이 대법관으로 일하며 법조계에선 이미 저명한 인물이었으나, 일반 국민에겐 낯선 사람이었다. 지난 군사정권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바로잡는 사정(司正)을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로 내건 YS정부에서 이회창의 ‘대쪽’ 이미지는 활용 가치가 컸다. 이회창으로선 대법원에서 감사원으로 옮기며 사실상 정치인으로 데뷔한 셈이다. 이후 총리를 거쳐 국회의원 그리고 한나라당 총재로 변신한 과정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한나라당의 후예라고 할 국민의힘의 오늘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며 이회창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