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은 지금 사법 독립 침해 우려가 큰 ‘사법3법’을 ‘사법 개혁’으로 포장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정작 국익과 미래 세대를 위해 필요한 개혁은 따로 있다. 노동개혁이다. 청년 실업과 정규직·비정규직의 양극화 심화(노동시장 이중구조), 성장 잠재력과 글로벌 경쟁력 약화, 인공지능(AI)발 일자리 감소…. 수많은 난제가 ‘정규직 과보호’ 체제와 연결돼 있다. 노동개혁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한 지 오래됐지만, 보수정부는 좌초하고 진보정부는 외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고용유연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거론하는 것은 눈길을 끈다. 기업의 노동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고용유연성은 노동계와 진보 진영의 금기어나 다름없다. 외환위기 와중에 집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파견근로법’과 ‘정리해고법’을 도입하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시도한 적은 있다. 하지만 외환 수혈 조건으로 구조개혁 청구서를 들이민 국제통화기금(IMF)의 강압에 따른 것이었다.
정리해고는 노동계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진보 진영이 해고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의 309일 타워크레인 농성 사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고 이 대통령도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그들 편에 섰다. 박근혜정부가 2015년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노동개혁을 추진하자, 이재명 성남시장은 “고용유연화, 해고자유화, 비정규직 확대하는 ‘노동개악법’ 통과시킬 겁니까?”라며 반대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되짚어 보면, 그의 노동관은 대선 후보가 되면서 조금씩 우클릭했다. 중도 보수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정치적 동기도 있겠지만,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의 귀결일 수도 있다. 후자의 비중이 더 크길 바란다. 이 대통령은 설 연휴 직전 국무회의에서도 “고용유연성에 대한 일종의 양보라면 좀 그렇고, 거기에 대해서도 좀 뭔가 대안을 만들어내야 된다”고 내각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북유럽 방식의 노동개혁을 선호하는 것 같다. 이른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다. 해고가 좀 더 자유로워지는 대신 국가와 기업이 실직자에게 최소한의 생계와 재취업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실용대통령다운 접근법이다.
경제든 노동이든 꿩 잡는 것이 매다. ‘유연안정성’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다. 문제는 어떻게다. 이재명정부는 노사정 대표가 모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꾀하고 있다.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업계는 ‘고용유연성’을 경사노위 의제로 제안했지만, 노동계는 “노동자 생존권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매우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주제”(한국노총)라면서 유보적이다. 이 대통령이 정확히 짚은 대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덴마크나 아일랜드처럼 사회연대협약을 성공시킨 나라의 공통점은 대화와 타협, 연대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부족한 신뢰 자본이 갑자기 채워질 리는 만무하다.
독일의 노동(구조)개혁안인 ‘어젠다 2010’이 우리의 경사노위 격인 ‘일자리창출연대’를 중심으로 추진됐지만, 합의에 실패하고 종국에는 정부 주도로 완성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개혁을 추진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2015년 방한 강연에서 “노사가 모두 적대적인 위치에서 정부에 요구만 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개혁은 위에서 아래로 가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의 당위성이 있다면 정부 주도로 개혁안을 만들고 밀어붙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혁의 적기는 정권의 힘이 강력한 취임 초반이어야 한다. 이재명정부 집권 2년 차인 올해가 골든 타임이다. 방식과 시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지지층의 반대에도 개혁을 성사시키겠다는 지도자의 의지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언젠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대타협을 해야 한다”(이 대통령)는 정도의 자세로는 쉽지 않다. 구직 활동조차 포기한 ‘쉬었음’ 청년이 수십만에 이른다. 이들을 생각한다면, 여권은 사법 개혁에 쏟는 열정의 절반이라도 노동개혁에 투입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