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남정훈 기자] ‘골골 80세’라는 관용구가 있다.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도 80세까지 장수하는 노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25~2026시즌 내내 부상자들과 씨름하면서도 순위표 위에 위치하며 돌풍을 일으켜온 현대건설이 파죽의 5연승을 달리며 드디어 선두 도로공사와 승점 차를 2로 줄였다. 시즌 전만 해도 주축 선수들의 FA 이적에 주포 역할을 할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봄 배구’조차 장담할 수 없었던 현대건설이지만, 이제는 챔피언결정전 직행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건설은 24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6라운드 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 주전들의 고른 활약을 앞세워 풀 세트 접전 끝에 3-2(26-24 25-17 23-25 10-25 15-11)로 이겼다. 승점 2를 챙겨 승점 58(20승11패)이 된 현대건설은 도로공사(승점 60, 21승10패)과의 승점 차를 2로 줄였다.
반면 4라운드까지만 해도 독주했던 도로공사는 5라운드 2승4패의 부진에 빠지며 현대건설에게 추격을 허용하더니 이날 지난 8일 페퍼저축은행전 허리부상 이후 개점휴업에 들어갔던 토종 에이스 강소휘가 복귀전을 치렀지만, 풀 세트 패배를 당해 선두 수성이 더욱 위태로워졌다. 셧아웃 패배의 위기에서 벗어나 승점 1을 챙긴게 위안거리였지만, 5세트 초반 타나차가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해 패배의 상처는 더욱 쓰라렸다.
1세트엔 서브에 두 팀의 희비가 갈렸다. 경기 초반은 완벽한 현대건설의 페이스였다. 현대건설의 아시아쿼터 자스티스가 3-1에서 리그 최고의 리시브 효율을 자랑하는 도로공사의 리베로 문정원을 플로터 서브 두 방으로 무너뜨리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5-1로 달아난 현대건설은 이후 안정적으로 리드를 가져가며 세트 중후반까지 18-12로 앞서나갔다.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던 강소휘는 11-16으로 뒤진 상황에서 김세인이 전위로 올라오자 교체로 코트를 밟았다. 네 경기만의 경기 출전이었다.
위기에 빠진 도로공사를 구해낸 것도 서브였다. 주인공은 원포인트 서버 이예은. 과거 2022~2023시즌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결정적인 서브로 도로공사의 리버스 스윕 우승에 숨은 공신이었던 이예은은 이날도 특유의 까다로운 무회전 서브로 들어오자마자 서브 에이스 두 방을 터뜨렸고, 이후에도 현대건설 리시브 라인을 괴롭히며 이예은의 서브 타임 때도로공사는 16-18까지 따라붙었다.
이후 접전 양상이 됐고, 결국 승부는 듀스에 돌입했다. 그리고 듀스를 끝낸 것도 서브였다. 24-24에서 모마의 퀵오픈을 양효진이 가로막으면서 세트포인트를 따냈고, 세터 김다인이 강소휘를 무릎 꿇리는 서브 득점으로 1세트를 현대건설이 따냈다. 자스티스가 1세트에만 서브득점 3개 포함 8점으로 맹활약했다. 도로공사는 모마가 1세트에 혼자 10점을 폭발시켰지만, 리베로 문정원이 리시브 효율이 마이너스(1/7, 서브득점 3개)를 기록한 게 컸다.
쉽게 가던 1세트를 어렵사리 따낸 덕분일까. 현대건설은 2세트에는 도로공사를 압도하면서 쉽게 따냈다. 2세트엔 카리 혼자 9점을 폭발시켰고, 이예림과 양효진, 김희진도 화력을 보탰다. 반면 도로공사는 1세트와 마찬가지로 2세트에도 모마가 9점으로 분전했지만, 아웃사이드 히터진의 공격이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완패 위기에 몰린 도로공사도 3세트에 다시 힘을 냈다. 세트 초반부터 난타전 양상으로 진행됐고, 세트 후반에도 도로공사의 21-20 박빙의 리드로 진행됐다. 동점을 내줄 위기에서 역시 해결사는 모마였다. 모마의 오픈 공격이 블로커 터치아웃이 되며 22-20을 만들었고, 강소휘가 이윤정의 흔들린 토스를 재치있는 두 손 밀어넣기로 현대건설 코트의 사각에 꽂아넣으면서 23-20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타나차의 공격 범실로 24-23으로 쫓겼지만, 다시 한 번 모마가 해결사 본능을 발휘하며 25-23을 만들며 승부를 4세트로 끌고 갔다.
4세트는 도로공사가 초반 분위기를 잡으며 주도했다. 3-3에서 현대건설의 3연속 공격 범실이 나오면서 6-3으로 점수 차가 벌어졌다.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은 4-7로 뒤지자 카리를 빼고 나현수를 아포짓으로 기용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모마의 빼어난 공격력을 중심으로 제 경기력을 회복한 도로공사를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9-15에서 주전 세터 김다인을 빼고 이수연을 투입하며 어느 정도 5세트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던 강성형 감독은 16-9에서 타나차(태국)의 서브득점까지 터져 더욱 패색이 짙어지자 이예림 대신 서지혜까지 투입했다.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도 19-10으로 크게 앞서자 모마 대신 베테랑 아포짓 황연주를 넣어 5세트를 대비했다.
5세트 초반 큰 변수가 발생했다. 2-2에서 카리가 오픈 공격을 하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블로킹하던 타나차가 카리의 발을 밟아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코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해 들것에 실려나간 타나차는 들것 위에서도 한참동안 몸을 들썩이며 흐느꼈다. 검진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타나차의 울음 정도를 봤을 때 가벼운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타나차의 부상으로 전의가 더욱 불탄 도로공사 선수들은 5-7에서 강소휘의 공격 2개와 상대 범실로 8-7로 역전에 성공하며 코트를 바꿨다.
리버스 스윕 패배의 위기에 놓인 현대건설도 이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7-9에서 자스티스의 오픈 공격, 상대 모마의 범실, 모마의 백어택을 자스티스가 블로킹해내며 10-9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자 도로공사도 강소휘의 퀵오픈으로 맞불을 놓으며 10-10 동점을 만들었다.
도로공사는 또 한번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자스티스의 공격을 블로킹하던 모마가 자스티스의 발을 밟아 발목이 살짝 돌아간 것. 타나차처럼 코트에 쓰러지진 않았지만, 모마는 한참이나 몸 상태를 체크해야했다. 다행히 모마는 교체없이 그대로 코트를 지켰다.
접전 양상은 강성형 감독의 비디오 판독 하나에 흔들렸다. 11-10 현대건설 리드 상황에서 양효진의 공격을 김세빈이 막아냈지만, 강성형 감독은 도로공사 세터 이윤정이 센터라인 침범을 잡아냈다. 이어 카리가 모마의 퀵오픈을 막아냈고, 양효진의 속공으로 14-11 매치 포인트에 도달한 현대건설은 원포인트 서버로 들어온 한미르의 서브득점으로 2시간 20분에 걸친 승부를 끝냈다.
현대건설은 카리와 자스티스 쌍포가 각각 27점, 19점을 몰아친 가운데 양효진이 11점으로 힘을 보탰다. 도로공사는 모마가 혼자 무려 38점을 때려박는 ‘원맨쇼’를 펼쳤고 배유나(13점)에 복귀전을 치른 강소휘도 13점으로 건재함을 알렸지만, 패배로 빛이 바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