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남성 A씨는 설 연휴인 지난 15일 목에 조개껍데기가 걸려 경기 고양의 한 2차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날 이 병원 응급실에서는 이형민 대한응급의학회장이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다. A씨의 목에 걸린 조개껍데기는 당장 내시경을 통해 손쉽게 빼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당 처치를 위해서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껍데기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식도가 찢어질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만일의 사태도 대비하기 위해서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대기해야 했지만, 당일에는 부재한 상태였다.
결국 이 회장은 A씨가 온전히 처치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기 위해 20여 곳을 넘게 전화를 돌리며 수소문했다. 이후 6시간 30분 만에서야 A씨는 흉부외과 수술도 가능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재이송됐다.
이 회장은 25일 통화에서 “당시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까지 부탁해서 수도권 병원 30∼40곳에 전화했다. 아무 곳도 받지 않다가 한 곳에서 받은 것”이라면서 “응급실에서 해당 환자(A씨)를 어디로 보낼 지에만 몇 시간을 허비했다. 다른 환자를 살필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이날 119구급대가 길거리에서 병원에 전화를 돌리며 수용 여부를 묻는 방식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산하 ‘광역응급의료상황실(광역상황실)’이 중증환자 이송 병원을 선정하고, 지연 시에는 사전에 지정된 ‘우선수용병원’에 환자를 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응급환자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광주, 전남, 전북 지역을 대상으로 3∼5월 시범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이 회장은 A씨의 사례를 언급하며 응급실 미수용 문제가 발생하는 건 병원의 수용 능력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대책에 관해 “단순히 기존 병원을 우선 수용 병원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뺑뺑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기존의 응급실이 우선수용병원이 된다고 해서 수용성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며 “최종치료 가능 병원을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 생긴 일인데, 이를 광역상황실이 한다고 다르지 않다. 이번 대책은 응급환자에게 ‘반창고’만 붙이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회장은 “응급실 미수용 관련 대책이 환자를 이송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환자가 어떻게 치료가 될 건지 고민해야 한다”며 “응급의료 현장에서는 전문의들이 열악한 환경을 못 버티고 떠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이번 시범사업 확정이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무총리 산하에 범부처 응급의료체계 개선 TF를 구성한 뒤 1월 중순에 시범사업 이야기가 나왔고, 3월에 곧바로 실행한다고 한다. 현장에서도 몰랐던 일”이라면서 “관련 대책이 급조됐다. 병원의 수용성을 높일 고민이 절실하다. 단순히 3개월간 시범사업하고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복지부 측은 이번 이송체계 혁신 시범사업에 관해 소방, 병원, 지자체 등 기관 간 지침을 만들어 응급환자 이송에 있어 ‘약속’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기관, 소방 등 여러 주체가 관여하기 때문에 지침이 작동하게 하기 위해 합의하도록 한 것”이라며 “각 주체가 서로 조율하면서 세부적인 지침을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관련 인력 및 인프라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번 시범사업이 시행될 광주∙전남∙전북 지역의 광역상황실도 인력 충원을 위해 다른 지역의 광역상황실에서 인력을 차출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른 광역상황실에서 인력을 같이 동원해 시범사업 지역에 10명가량 충원할 예정이다”며 “다른 지역의 광역상황실에서 업무 과부하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에 관해 의료계에서 환영하는 반응도 있다. 대학병원 교수 중심인 대한응급의학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역 응급의료체계와 지침을 존중하고 소통과 협업을 통해 시범사업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시범사업으로 응급의료 현장의 문제점이 개선되고, 향후 응급의료체계가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응급의료 불안과 우려를 해소하려면 응급의료 분야를 과감히 지원하고 보장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형사상 면책, 민사상 손해배상 최고액 제한 같은 법적·제도적 개선도 국회 입법을 통해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