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너무 행복해요.’
10여년 전 유행했던 TV 광고 문구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선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가뜩이나 여성이 별로 없는 소방 공무원 조직에서 여성 119구조대원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소방 업무 자체가 강인한 체력과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곳이어서 여성이 하기엔 힘든 일이 많아 그동안 ‘금녀(禁女)의 벽’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특히 구조대원은 더하다. 교통사고, 붕괴?추락사고, 산악?수난사고 등 각종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직접 구조하는 게 주된 일이지만 여전히 ‘여자는 구조 업무를 할 수 없다’는 편견이 존재해 왔다.
최근 이 벽이 허물어졌다. 주인공은 대구 강북소방서에서 첫 여성 119구조대원이 된 김효선(30) 소방사다. 그는 2023년 4월 소방서 개서 이래 첫 여성 인명구조사(2급)이자 대구 전체를 통틀어서도 여성 119구조대원은 ‘1호’다. 전국에서도 2024년 기준 전체 여성 소방관 6000여명 가운데 여성 구조대원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24일 대구 북구 구암동에 있는 소방서 내 휴게실에서 만난 김 소방사는 160㎝가량의 키에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 20~30대 특유의 발랄함을 갖고 있었지만, 날 선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성으로서 소방 공무원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성별을 떠나 재난 현장에서 강하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능력과 자질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벽’ 따윈 없다”라는 의연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김 소방사는 우연히 소방관들의 활약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접한 것이 인생 전환의 계기가 됐다. 김 소방사는 “처음엔 단순히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소방관 시험을 준비했지만, 한두 번 채용시험에서 떨어지다 보니 ‘오기’가 생겼고, 결국 ‘3수’ 만에 어렵게 합격했다”고 회상했다.
2024년 7월 임용된 김 소방사는 ‘화재 진압 대원’으로 첫 근무를 하는 동안 자신을 눈여겨본 구암119안전센터 팀장의 권유로 인명구조사를 준비해 지난해 9월 남자 대원도 혀를 내두르는 힘든 고난도 훈련을 모두 통과했다. 고된 시험으로 알려진 인명구조사는 ‘철인 3종’ 경기와 맞먹는 수준의 체력을 요구한다. 그는 “기초체력 시험 통과 후 수중 구조 훈련에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팀원들의 도움으로 단기간 체력을 끌어올려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김 소방사는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담벼락을 넘고 고군분투하는 구조대원의 모습에 매료돼 또다시 구조대 팀장, 부서장과 상의해 지난달 1일 정기 인사에서 119구조대원으로 발령받았다.
김 소방사는 “여성 스스로 내면의 벽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들이 생각하듯 억세고 거친 재난 현장이지만 오히려 여성이란 점이 그런 환경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스스로 여성이라는 굴레 안에 갇혀 겁먹지 않고 여러 분야에 도전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물론 대구 첫 여성 119구조대원이란 타이틀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다. 김 소방사는 “여성 최초도 부담스러운데 요즘 축하 전화뿐 아니라 각종 인터뷰 요청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책임은 무겁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더 잘 해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앞으로 어떤 구조대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초 여성 대원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는 구조대원이 되고 싶다”며 “남성 소방관보다 체력이나 구조장비 숙달 능력이 조금도 뒤처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