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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선 10만원, 마트선 880원”…삼겹살 ‘가격 전쟁’에 몰린 소비자 [일상톡톡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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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삼겹살 1인분 2만원 육박…소비자들 마트·편의점으로 발길 돌려
유통업계 ‘삼삼데이’ 앞두고 100g당 800원대 초저가 미끼 상품 총력전
정부 수급 대책 만지작거리지만…장바구니 체감 물가 인하는 ‘미지수’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축산 매장. 25일 오전 10시 셔터가 올라가자마자 텅 빈 카트 십여 대가 일제히 정육 코너로 내달렸다. 매대 상단에 나붙은 붉은색 팻말의 숫자는 ‘100g당 880원’. 직원이 포장육을 채워 넣기 무섭게 매대 빈칸은 순식간에 넓어졌다. 다가오는 ‘삼삼데이(3월 3일)’를 겨냥해 불붙은 유통업계 초저가 가격 전쟁의 한복판이다.

 

솥뚜껑 불판 위에서 두툼한 삼겹살이 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 미나리와 콩나물, 고사리, 김치 등 다양한 채소가 곁들여져 있다. 게티이미지
솥뚜껑 불판 위에서 두툼한 삼겹살이 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 미나리와 콩나물, 고사리, 김치 등 다양한 채소가 곁들여져 있다. 게티이미지

곧바로 지표가 현실의 무게를 증명한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지역 외식 삼겹살 1인분(200g) 평균 가격은 1만9429원이다. 2만원 돌파를 목전에 뒀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농축수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0%)을 상회했다. 농축수산물이 체감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식당에서 네 식구 고기 좀 구워 먹으면 10만원이 훌쩍 넘는데, 여기선 1만5000원어치만 사도 배불리 먹거든요.” 매대 앞에서 만난 40대 주부 김모 씨가 돼지고기 세 팩을 장바구니에 쓸어 담으며 말했다.

 

매장 한편에서는 직원이 “1인당 2팩 한정입니다”라고 외쳤지만, 부부 동반으로 와서 각자 결제하며 물량을 확보하는 알뜰 쇼핑객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초저가 경쟁, 이면의 셈법

 

왜 유통업체들은 이토록 10~100원 단위 출혈 경쟁에 사활을 거는 걸까.

 

800원대 삼겹살은 사실상 팔아도 남는 게 거의 없는 ‘미끼 상품’에 가깝다. 핵심은 고기로 고객의 발을 매장 안으로 묶어두는 데 있다. 삼겹살을 장바구니에 담은 소비자는 필연적으로 쌈채소, 주류, 쌈장 등 마진율이 높은 연관 상품을 함께 구매한다.

 

오프라인 채널의 생존 경쟁 속에서 초저가 돼지고기는 굳게 닫힌 지갑을 열고 매장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승부수임을 뜻한다.

 

◆편의점도 가세한 트래픽 쟁탈전

 

올해는 편의점 업계의 공세도 매섭다. GS25와 CU는 300~500g 단위 1~2인용 소포장 한돈 제품을 앞세워 사전 예약을 진행하고 물량을 대폭 확대했다. 과거 삼삼데이 매출 증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동네 편의점 냉장고를 미니 정육점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1~2인 가구 증가 추세와 맞물려, 대량 구매는 마트에서, 소량 구매는 편의점에서 해결하는 소비 패턴이 점차 굳어지고 있다.

 

정부도 밥상 물가 안정을 위한 카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축산물 수급 안정을 위해 자조금을 활용한 할인 지원 확대와 공급 확대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2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 진열된 한돈 삼겹살 제품. 행사 조건과 카드 적용 여부에 따라 최종 판매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사진=김현주 기자
2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정육 코너에 진열된 한돈 삼겹살 제품. 행사 조건과 카드 적용 여부에 따라 최종 판매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사진=김현주 기자

다만 변수는 여전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같은 돌발 악재가 발생하면 사육두수 감소와 출하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국제 곡물 가격과 환율 영향을 받는 사료비 등 생산비 부담도 상존한다. 단기 할인 행사가 종료된 이후에도 가격 안정 흐름이 이어질지는 수급 여건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관건은 퇴근길 서민들의 얇아진 지갑 사정이다. 삼겹살 매대 앞에서 소비자가 멈칫하며 저울질하는 것은 단순한 고기 한 근의 무게가 아니다. 팍팍한 월급쟁이 생활 속에서 ‘오늘 저녁은 식당이냐, 집이냐’를 가르는 치열한 생존의 선택이다.

 

카트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발걸음은 서둘러 계산대를 향했지만, 정육 코너 시식 매대에서 피어오른 고기 굽는 연기만은 매장 밖 쌀쌀한 공기 속으로 허무하게 흩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