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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소원, ‘기본권 구제’인가 권력층의 ‘최후 비상구’인가 [장혜진의 법조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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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헌법재판소는 말한다. 재판소원은 4심제가 아니라고. 국민의 기본권 침해 여부를 가리는 헌법심이라고.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어디까지가 법률 해석이고, 어디부터가 헌법적 쟁점인가.”

 

이 경계는 헌재의 주장처럼 명확하지 않다.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헌재가 일반 법원의 확정판결을 취소하는 순간, 재판소원은 헌재의 판단에 따라 대법원 결론을 뒤집을 수 있는 사실상의 ‘최종심’이 된다.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명명하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스페인에서 벌어진 ‘로스 알베르토스(Los Albertos)’ 사건은 재판소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금융·부동산 업계 거물 알베르토 알코세르와 알베르토 코르티나 형제는 부동산 개발사 우르바노르(Urbanor) 소액주주들을 속여 지분을 헐값에 매집한 혐의로 기소됐다. 2003년 스페인 대법원은 징역 3년 4개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그러나 2008년 스페인 헌법재판소 제2부는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 판단하며 유죄 판결을 취소했다. 일반적으로 법원의 법률 해석 영역으로 여겨지던 시효 문제를 ‘헌법적 차원’에서 다시 판단한 것이다. 감옥행을 눈앞에 뒀던 이들 형제는 자유의 몸이 됐다.

 

헌재 내부에서도 기준은 엇갈렸다. 또다른 재판부는 앞선 결정에서 “공소시효의 해석은 원칙적으로 일반 법원의 몫”이라고 선을 그은 바 있었다. 

 

스페인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공개 반발했다. 헌법 제123조가 부여한 ‘일반 법률 해석의 최고 지위’를 헌재가 침해했다고 직격했다. 언론과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소원이 ‘기본권 구제’가 아니라 유력 인사들이 판결을 뒤집는 ‘최후 비상구’가 되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가 나왔다. 

 

이 비상구가 누구에게나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접수된 재판소원 사건의 90∼95%는 별다른 설명 없이 사전심사에서 탈락된다. 스페인의 최근 5년간 재판소원 인용률은 0.7 ~ 1.4% 수준이다. 독일은 0.8~2.0%, 대만은 0.5% 내외이다. 법조계에서는 결국 헌법에 대한 전문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절차 특성상 헌법재판관이나 헌법연구관을 지낸 ‘헌재 전관 변호사’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확정판결 이후에도 분쟁을 다시 열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한 당사자의 권리만 생각할뿐, 승소한 당사자의 헌법상 기본권인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는 관심이 없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또다른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이론적으로 1심, 2심, 3심, 재판소원을 거친 뒤, 다시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 3심과 재판소원을 반복하면 소송의 무한 반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4심제는 아니다’라는 헌재의 설명은 제도적 형식일 뿐이다. 헌법적 통제가 일반 법률 해석을 어디까지 관통할 것인가.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재판소원은 국민의 구제수단이 아니라 권력층의 예외적 비상구가 된다. 스페인은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미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