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앞두고 인공지능(AI) 기술이 107년 전 독립을 위한 함성을 모니터로 소환하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위인을 조롱하는 AI 영상 논란이 불거져 씁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은 3·1절을 맞아 민족 자주독립의 정신을 기리는 차원에서 ‘3월1일, 학생들은 외쳤다-학생 독립운동가 AI 복원·재현 영상’을 제작했다고 27일 밝혔다.
복원 작업은 과거 영웅을 박제된 역사가 아닌 현재와 호흡하는 인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표정과 시선·미세한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구현함으로써 열사들의 결연한 의지와 시대적 절박함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교육청이 복원한 인물은 독립운동에 참여했거나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하다 발각돼 17세의 나이로 체포된 유관순·이범재·최복순·오홍순·성혜자·신기철, 배화학당 뒷산에서 교우들과 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된 소은명(당시 15세)·김마리아(당시 18세), 서울 종로 독립만세운동 참가 후 체포된 박홍식(당시 18세) 열사 등 모두 9명이다.
하지만 기술의 빛이 밝을수록 그 뒤편에 드리운 그림자도 짙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숏폼 플랫폼 ‘틱톡’에는 유관순 열사를 악의적으로 희화화한 AI 생성 영상들이 잇따라 올라와 전 국민적 공분을 샀다. 열사가 일장기에 애정을 표하거나, ‘유관순 방귀로켓’을 외치며 우주로 솟구치는 등 상식 밖의 내용이 영상에 담겼다.
논란의 영상은 오픈AI 영상 생성 도구 ‘소라(Sora)’ 등을 활용해 제작됐다. 프로그램이 생전 모습으로 참고한 건 3·1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됐을 때 찍힌 수의 차림 열사 사진이다. 가뜩이나 일제 고문으로 퉁퉁 부은 얼굴이 AI로 복원돼 희화화됐다.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숭고한 희생이 콘텐츠 제작자의 ‘조회수 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처럼 명백한 반인륜적 행위를 제재할 마땅한 법적 수단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고인 모독 사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사자명예훼손죄는 ‘허위 사실 적시’가 입증되어야 처벌할 수 있다. 문제의 영상처럼 참과 거짓을 따지는 게 의미 없는 원색적인 조롱이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욕설 등은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모욕죄도 생존 인물로 대상을 한정해 고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수사 당국이 내사에 착수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로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삭제 요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 기술을 윤리적 가이드라인과 법 제도는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3·1절을 앞두고 올라온 영상에 누리꾼들은 ‘도가 지나치다’며 분노했다. 한 누리꾼은 “위인으로 그러는 건 진짜 아니다”라며 댓글을 달았고, 다른 누리꾼도 “이건 아니다, 선 넘지 마라”고 반응했다.
독립운동가 생전 모습의 생생한 복원으로 애국심·보훈 의식을 고취한다는 긍정 기능과 함께 ‘선진 기술’로 평가받은 AI의 부작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복 소식에 환히 웃는 유관순 열사나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AI 기술이 이번에는 역사 속 위인을 폄하한 용도로 쓰여서다.
AI의 폐해를 막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기는 했으나 주로 인물 사진을 AI에 입력해 성 착취물을 생성하지 못하도록 막는 등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4월 사자모욕죄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생성형 AI의 부작용과 결부된 본격적인 입법 논의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