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27일 처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달 16일 법원행정처장에 취임한 지 40일 만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3법’(법 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12명 증원) 입법 강행과 관련해 사법부 고위직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박 처장은 이날 오전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박 처장은 입장문을 통해 “최근 여러 상황과 법원 안팎의 논의 등을 종합해볼 때 제가 물러나는 것이 국민과 사법부를 위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아 처장직을 내려놓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가 많은 어려움을 겪는 시점에 물러나게 돼 여러모로 송구스럽다”며 “부디 현재 진행되는 사법제도 개편 관련 논의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박 처장은 처장직에선 물러나지만 대법관직은 계속 유지한다.
박 처장의 사의 표명은 민주당의 사법 3법 강행에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판사·검사 등이 형사사건에서 사실을 조작하거나 법을 왜곡하면 최대 징역 10년에 처하도록 하는 일명 ‘법 왜곡죄’(형법 개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재판소원제(헌법재판소 개정안), 대법관 12명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도 통과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사법행정 책임자의 사임’을 통해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앞서 25일 박 처장은 사법 3법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 각급 법원장들의 회의체인 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소집해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를 마친 법원장들은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통해서만 존립할 수 있는데도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해 현 상황에 이른 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정치권의 입법 추진 방식과 사법 3법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냈다.
법 왜곡죄에 대해선 “수정안을 고려하더라도 범죄 구성요건이 추상적이어서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고, 고소·고발 남발 등 심대한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판의 신속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2024년 5월 대법관에 임명된 박 처장은 지난달 13일 천대엽 전 법원행정처장의 후임으로 법원행정처장에 임명됐다. 박 처장은 지난해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한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 상고심에서 주심을 맡았다.
법원행정처장은 전국 각급 법원의 인사, 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고 국회 등 대외 업무를 책임지는 사법부 요직이다. 법원행정처장의 임명을 받은 현직 대법관이 수행하며 처장 임기 2년 동안 대법원 재판은 맡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