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전장으로 달려간 그 고귀한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자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7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주(駐)네덜란드 한국 대사관. 홍석인 대사가 이렇게 말하며 6·25 전쟁 참전용사 헨리쿠스 페트루스 베링(93)씨의 목에 ‘평화의 메달’을 걸어주자 노병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고령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베링을 대신해 손자가 소감을 밝혔다.
“이 메달은 혹독한 영하의 기온, 식량 부족, 전우를 잃는 아픔 속에서도 머나먼 나라에서 평화를 위해 헌신한 할아버지의 공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랑스럽다’는 말로는 우리 가족에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
베링은 6·25 전쟁이 휴전을 향해 달려가며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고자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던 1953년 초 한국에 파병됐다. 최전선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른 끝에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갔다. 애초 네덜란드 반호이츠 부대에 자원 입대했던 그는 전후에도 군에 남아 평생을 직업 군인으로 헌신했다.
마침 이날은 베링의 94번째 생일(3월8일)이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다. 베링의 가족은 그에게 뜻깊은 추억을 선사하고자 한국 대사관 협조를 얻어 특별한 생일 잔치를 준비했다. 메달을 베링에게 건네며 홍 대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드리는 작은 감사의 표현이자, 영원히 우리의 형제로 기억하겠다는 약속”이라며 “당신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후에는 한번도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는 베링은 그래도 “한국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한국도 저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그는 “절친한 전우가 귀국을 하루 앞두고 전사한 것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며 “나 또한 파편이 등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지만 참전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싸운 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3년이 조금 넘는 6·25 전쟁 기간 네덜란드는 유엔군 일원으로 연인원 5300여명의 장병을 보내 한국을 도왔다. 이는 강대국이라는 프랑스(3400여명)보다도 많은 숫자다. 베링이 속한 육군 반호이츠 부대는 강원 원주와 횡성 지구 전투 등에서 큰 전공을 세웠으나, 동시에 많은 희생도 치렀다. 네덜란드군 전사자는 120여명에 이르며 그 대부분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