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은 ‘밀월’과 ‘반목’을 반복하며 100년이 넘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1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1925년 미국은 당시 이란 통치세력인 팔레비 왕조를 지원했다. 중동 원유 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1950년대 들어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가 반외세와 민족주의를 내세워 석유산업 국유화 등에 나섰다. 이를 경계한 미국은 1953년 영국과 손잡고 모사데그 총리를 쿠데타로 축출했다.
이후 친서방 성향의 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가 복위됐다. 이를 계기로 이란 사회에는 깊은 반미 정서가 각인됐지만 이후 팔레비 왕정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백색 혁명’이라 불리는 강력한 서구화·세속화 정책을 펼치며 중동 내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군림했다.
철권통치를 이어가던 왕정은 1979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슬람혁명으로 무너졌다. 새로 수립된 신정 체제는 미국을 ‘대악마’로 규정했고, 그해 11월 발생한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은 양국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이란 대학생들이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억류했다. 미국은 인질 구출을 위한 ‘독수리 발톱’을 감행했지만 실패했다. 444일 만에 끝난 인질극을 계기로 미국은 이란과 단교를 선언했으며, 이때부터 공식적인 외교 채널이 40년 넘게 닫히게 됐다.
이후 양국은 세대마다 비극적인 사건들로 엮였다. 1980년대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고, 1988년에는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함의 이란 민항기 오인 격추 참사도 있었다. 2002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란의 비밀 핵시설 존재가 폭로되면서 갈등은 핵 문제로 옮겨붙었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타결된 이란 핵 합의(JCPOA)가 잠시 해빙기를 가져오는 듯했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일방적 탈퇴와 ‘최대 압박’ 정책으로 외교적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2020년 미국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한 이후 전면전 직전의 양측 관계 위기는 반복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출범 후 지난해 6월 미국은 이란의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 내 3곳의 주요 핵시설을 B-2 스텔스 폭격기 등을 동원해 파괴하는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벌였다.
이란 내 살인적인 물가 상승과 반정부 시위에 대한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민심이 이반된 상황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끝내 최고 통치권자인 하메네이를 겨냥한 직접적인 군사 옵션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