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을 조성해 국회의원들에게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와 관련해 황창규 전 회장과 구현모 전 대표이사 등 전직 KT 경영진들의 손해배상 책임을 다시 가릴 필요가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박모씨 등 KT 소액주주 35명이 황창규·이석채 전 회장과 구 전 대표 등 전·현직 임원 1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소액주주들은 2019년 3월 전·현직 임원의 위법행위로 KT가 손해를 봤다며 765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경영진에 책임을 청구한 사유는 크게 네 가지였다. △2010년 무궁화위성 3호 해외 불법 매각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재단법인 미르에 금전 출연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에 따른 통신망 장애 등이었다.
구 전 대표가 전·현직 임원 9명과 함께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상품권을 매입한 뒤 되파는 이른바 ‘상품권 깡’ 방식으로 비자금 11억5000만원을 조성하고, 이 중 4억3000만원가량을 19·20대 여야 국회의원 111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것과 관련해서도 배상 책임을 물었다.
이와 관련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검찰과 구 전 대표가 상고를 포기하며 이 사건 원심에서 벌금 700만원형이 확정됐고, 업무상 횡령 혐의는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별도로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 손해배상 소송은 1심과 2심 모두 구 전 대표와 황 전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전·현직 임원의 법령 위반이나 임무 해태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구 전 대표에 대해선 법령 위반 및 임무 해태를 인정했으나 정치자금으로 제공된 금액이 반환돼 회사의 손해가 전보됐다는 이유 등으로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배상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는 취지로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비자금 조성은 그 자체로 KT와의 위임계약에 따른 임무 위반으로서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며 “황 전 회장은 대표이사로서 부외자금이 조성된 날부터, 구 전 대표는 그 후 이사로 선임된 시점부터 각 조성이 종료된 날까지 감시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특히 대법원은 감사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손해의 범위를 더넓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법령을 위반하고 감시의무를 게을리한 기간 동안 조성된 부외자금(비자금) 중 정치자금으로 송금된 부분만을 손해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며 “그 의무 위반 등 행위와 KT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재로 추징금 및 과징금을 납부함으로써 입은 손해와의 상당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짚었다. 반환된 정치자금 외에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KT가 낸 막대한 과징금과 추징금에 대한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대법원은 무궁화위성 3호 매각, 미르재단 출연, 아현지사 화재 관련해서는 피고들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방치한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을 확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