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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미술관은 작가들의 경력이자 역사의 일부… 꼭 버텨야 해”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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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어온 예술적 동지애
1996년 ‘갤러리 사비나’ 문 열어 전시
파격적인 테마 중심 기획전으로 명성
상업화 대신 미술관 변신 공공성 확장
미술·과학 융합한 전시로 새 영역 개척
작품성만 보고 작가 초청 인연 이어가

실패의 경험들이 만든 성공
대학 때 시인이 되려했지만 등단 실패
30대 초반엔 그림 배우려 해외로 유학
그림 그리기보다 ‘보는 눈’에 재능 발견
결국 회화서 예술 기획으로 진로 선회
전시 주제로 베스트셀러도 다수 써내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던 23명의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두려움’을 주제로 작품을 모은 메인 전시 ‘10,000일의 질문-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를 둘러본 뒤, 칸막이가 쳐진 다른 구역으로 들어서자 특별 섹션이 펼쳐졌다. ‘10,000일의 동행, 초상화로 말하다’.

미술관을 통해 인연을 맺은 15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시선으로 포착한 초상화 17점이 전시돼 있었다. 안창홍 작가가 그린 하늘색 분위기가 도드라진 초상화, 유근택 작가가 그린 특유의 강렬한 화풍의 초상화, 이재삼 작가가 작업한 화사한 스카프가 인상적인 초상화….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개관 30주년 기념전 ‘1만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 전시장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배경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사비나미술관 이명옥 관장이 개관 30주년 기념전 ‘1만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 전시장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배경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그런데 모든 초상화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 30년간 이들 작가와 함께 성장해온 사비나미술관의 이명옥(71) 관장이었다. 이들 초상화야말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예술적 동지애로 작가들의 시간을 증명해온 미술관장에게 보내는 작가들의 헌사이자 러브 레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관과 작가의 관계를 협력의 차원을 넘어, ‘예술적 동지’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내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처음엔 망설였지만, 막상 꺼내놓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동시에 재밌기도 했어요.”

옅은 붉은색 두건을 쓴 이 관장은 지난달 5일 미술관의 30년 궤적을 회고하는 ‘사비나미술관 개관 30주년: 1만일의 시간, 미술이 묻고 사비나가 답하다’ 전시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수줍게 말했다. 전시는 4월19일까지. 설명의 끝자락에, 그는 스스로 다짐 같은 말을 덧붙였다. 꼭 버텨야 한다고.

“제가 미술관을 닫아버리면, 그동안 여기서 전시한 작가들의 경력도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걸 제가 감당할 수 없었어요. 미술관은 작가의 ‘이력’이자 ‘시간을 증명하는 장치’이죠. 미술관 이름이 남아 있으면 작가의 이력도 설명이 되잖아요. 그런데 전시장이 사라져버리면, 이 작가가 무엇을 해온 작가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버텨야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시대성을 반영한 테마 중심의 기획을 바탕으로 융복합형 전시를 개척해온 사비나미술관. 이 관장은 도대체 어떻게 1만일의 시간을 건너왔을까. 그가 사비나미술관을 통해 1만일 동안 우리 사회에 물었던 질문은 무엇일까. 미술인 이명옥의 여로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이 관장을 지난달 19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다시 마주해야 했다.

―지난 5일 간담회에서 “버텨야 한다”고 강조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잡지 샘터를 발간하는 샘터사 대표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50년을 버틴 그는, 마지막까지 버티려고 했는데 결국 휴간하게 됐다고 하더라. 잡지를 파는 것도 저렇게 힘든데…. 비영리인 미술관은 갤러리와 달리 작품 판매도 대관도 하지 않는데, 자체 기획으로만 버틴다는 건 경제적 고통이 크다. 미술계에서 사비나미술관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비용은 더 많이 소요되고 시스템화에 따른 부담도 커지고 있다. 우리는 작가 경력과, 작가가 어디서 전시를 했냐를 먼저 본다. 미술관이 사라지면 작가 역사의 일부가 사라지기에 최선을 다해서 버텨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계기로 1996년 사비나미술관의 전신 ‘갤러리 사비나’를 오픈했는지.

“당시 한국 미술 전시장에는 큐레이션 서비스가 없었고, 관객의 취향을 겨냥한 주제전도 많지 않았다. 예를 들어, 청년 작가전 원로 작가전 등 제목을 봐선 무슨 전시인지 입력이 안 되는 전시가 많았다. 주제를 좀더 정확하게 해 관객에게 선택권을 주자고 생각했다. 미술에 일종의 큐레이션 서비스를 도입하고 싶었다. 서울 인사동의 건물을 임대, 기획전문 갤러리를 표방하며 열게 됐다.”

―사비나는 다른 갤러리와 달리 시대성을 반영한 테마 중심의 기획전으로 명성을 쌓아왔는데.

“처음부터 주제성을 강화해 관객이 무엇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오게 했다. 개관전 ‘인간의 해석’을 시작으로 ‘밤의 풍경’전 등 다양한 전시기획을 했다. 놀랍게도 언론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신생 갤러리의 기획전임에도 크게 다루어 줬고, 짧은 시간 안에 유명해졌다. 특히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잘려진 키스장면을 보는 것을 보고 ‘입맞춤’전을 기획해 화제를 모았고, 반려견 문화가 막 생겨날 즈음인 2002년에는 ‘더도그’전을 애견협회와 함께 열기도 했다. 전시장에 반려견을 데리고 들어올 수 있게 한 게 큰 화제를 낳았다.”

―2002년에는 안국동으로 옮기고 미술관으로 등록했다.

“어느 순간 인사동이 너무 상업화하고 진부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전이 주목을 받으면서 자신감도 어느 정도 생겼다. 미술관으로 바꿔 공공성을 더 확장하자고 생각했다. 상업적으로 운영했다면 불편했겠지만, 비영리로 운영해왔기에 미술관을 바꾸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안국동의 옛날 병원 건물을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미술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전시 비용이 많이 들어가진 않았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럭저럭 운영이 됐다.”

―사비나는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과 과학을 결합하는 등 융복합형 전시를 선도해왔는데.

“2005년부터 ‘예술과 과학의 판타지’ 등을 비롯해 미술과 과학을 융합한 전시를 시작했다. 특히 2017년 개최한 ‘#셀피-나를 찍는 사람들’전은 스마트폰 보급과 SNS 확산으로 누구나 자신을 찍고 올리는 시대를 잘 포착해낸 전시로 호평받았다. 전시장을 작품이자 포토존으로 설계해 관람객이 직접 사진을 찍고 올리도록 해 관객의 경험을 전시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무려 2만7895명이나 미술관을 찾았고, 참여형 전시 모델을 구축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그해 예술경영 대상과 문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사비나는 지금 디지털 기술을 전시와 교육, 아카이브 전 영역에 도입해 세계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왜 2018년 10월 이곳 진관동으로 이전했는가.

“설치 미술이나 미디어 아트 경향이 점점 강해졌지만,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애초 낡은 병원 건물이어서 공간도 좁고, 전체 조도도 맞지 않았으며, 주차도 여의치 않았다. 다만, 서울은 벗어날 수 없고, 비용은 비싸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전시 공간은 600평으로 늘었고, 인프라는 탄탄하게 갖추게 됐다.”

―30년 사립 미술관을 운영하며 견지해온 철학이나 원칙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작가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했다. 작품이 좋으면서도 지속 가능성이 있는 작가,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10년을 꾸준히 지켜본다. 학연이나 인맥은 전혀 보지 않고 오로지 작품성만 보고 작가를 초청한다. 또 전시를 하고 나서도 해외 전시와 연결한다든가 작품 연구집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등 작가를 계속 프로모션해준다.”

어렸을 때부터 책과 책읽기가 좋았다. 화집을 보는 것도 좋았다. 각종 문학책에는 작가들의 그림들이 실렸는데, 그림을 보면서 문학과 그림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했다. 특히 시가 좋았다. 대학 시절에는 혼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신춘문예에 여러 차례 응모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자괴감이 생겼다.

이명옥은 대학을 졸업한 뒤 6, 7년 동안 지역방송국의 교양 PD로 일했다. 기획력을 바탕으로 게스트를 초청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기획력과 강한 책임감으로 일을 추진하는 자신의 스타일이나 취향과 잘 맞았다. 이때 전시를 좋아해 자주 보러 다니기도 했다. 문학과 그림, 방송이 맞물리던 순간이었다.

30대 초반, 그는 그림을 제대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작가들로부터 6, 7년 동안 미술 사사를 받은 뒤,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 회화과에 들어갔다. 소피아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지만, 자신에게 그림을 그리는 천재성보다는 그림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절망했다. 재능을 주지 않고 천재성을 볼 수 있는 눈만 있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 같은 느낌이랄까.

결국 회화에서 예술 기획으로 진로를 선회했다. 조금씩 미술전 기획을 해나가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명옥은 1996년 서울 인사동에 사비나미술관의 전신이자 기획전문 갤러리인 ‘갤러리 사비나’를 열고 전시기획을 본격화했다.

이후 개관 기념전 ‘인간의 해석’을 시작으로 ‘교과서 미술전’(1997), ‘입맞춤전’(1998), ‘기상청과 함께하는 일기예보전’(2000), ‘더 도그전’(2002) 등 동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온 기획전을 선도했다. 우수미술관상과 한국박물관협회장상, 디지털혁신 장려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10년 후의 계획은. 미술인으로서 포부라든가 비전은 어떤가.

“무계획의 계획이다. 항상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더라. 늘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서 10년 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늘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집착하는 건 부질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고,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 고.”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팜므 파탈’,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명화 경제 토크’ 등 미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와 통섭하는 내용을 담은 책을 펴내 사랑을 받았다.

―바쁜 와중에서 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냈는데. 놀랍다.

“갤러리를 연 지 몇 년 만에 책 ‘갤러리 이야기’를 펴냈다. 지금은 절판됐지만, 갤러리 안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쓴 것이다. 이후 책도 기획하게 되면서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 이야기’ 등을 썼는데, 점점 미술관 전시 주제와 연결이 되더라. 나중에는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를 비롯해 미술과 다른 테마를 연결 융합시키는 책을 쓰게 됐다.”

―미술 기획자와 유명 강사, 베스트셀러 작가 등 다양한 방면에서 마치 르네상스인처럼 맹활약하고 있는데, 원동력은 무엇인가.

“화가가 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이 좋은 작가를 ‘픽’하는 눈으로 왔다. 국민대에서 한 15년 동안 강의를 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책을 내게 됐다. 시인이 되지 못해 좌절감도 많았는데, 오히려 글로 온 것이다. 지금은 미술과 전시, 강의, 책과 글 세 개 분야가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삶을 산다. 감사한 일이다. 경제적인 고통만 없으면 대만족이다. 오랫동안 한국 미술계에 이바지를 하고 싶다. 사실 여러 차례 좌절했지만 다시 도전해 길을 찾게 됐다. 좌절이 어떤 숙성의 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의 저를 있게 한 것 같다. 우연은 없고, 알지 못한 운명에 의해서 나아간다.”

 

이명옥 관장은…
●1955년 서울 출생 ●성신여대 학사, 불가리아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 회화과 석사,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 전공 ●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 역임 ●책 ‘팜므파탈’,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그림 읽는 CEO’ 등 다수 저술 ●현재 사비나미술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