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4월 이모(당시 21세·여)씨가 서울 영등포구의 한 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달려오는 택시에 치어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 이씨는 1981년 여고 졸업 후 어느 중소기업에 취업해 외부에서 걸려 온 전화 교환 업무를 담당했다. 사고 후 더는 회사에 다닐 수 없어 퇴사한 이씨는 가해자인 택시 운전사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퇴직 연령인 55세까지 회사에 다니면 받을 수 있을 급여 등을 토대로 약 3500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요구했다. 당시는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이 서울민사지법과 서울형사지법 두 개의 법원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이다. 이씨의 소장을 접수한 서울민사지법은 곧장 심리에 착수했다.
1심 선고는 사고 후 꼭 2년이 흐른 1985년 4월 내려졌다. 서울민사지법 제15합의부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택시 기사가 물어야 할 배상액을 846만원으로 확 줄였다. 재판부는 앞서 이씨가 다녔던 직장이 여직원의 정년에 관한 명시적 규정을 두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판결문에는 “여성 사원으로서 수입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25세까지”라며 “26세부터 55세까지는 일용 도시 여성 근로자 일당 임금 4000원만 인정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왜 하필 25세였을까. 재판부는 “한국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26세”라며 “25세 이후로는 가정 주부로 살아갈 것”이란 이유를 들었다. 이 판결은 ‘미혼 직장 여성의 정년은 25세’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여성계의 공분을 샀다.
충격에 휩싸인 여성 단체들은 “이른바 ‘결혼 퇴직제’를 정당화시킨 사법부는 시대착오적 판결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말이 결혼 퇴직제이지 이는 헌법이나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구적 개념이요, 악습에 불과했다. 당대 최고의 인권변호사로 통하던 조영래(1947∼1990) 변호사가 이씨 사건의 항소심 대리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서울고법 2심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조 변호사는 “이 판결의 근저에는 기혼 여성의 취업을 백안시하고 가사노동 전념을 미덕으로 보는 전통 시대의 남성 지배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미혼 직장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퇴직해야 한다’는 결혼 퇴직제의 허무맹랑함을 질타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86년 3월4일 서울고법 민사3부(재판장 김성일)가 이씨 사건 항소심 판결을 선고했다. ‘여성의 정년은 25세’라고 했던 1심을 깨고 “이씨의 근무 가능 기간은 법정 정년인 55세까지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씨가 재직한 회사는 미혼 여성의 결혼 퇴직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미혼 여성도 일반 근로자의 퇴직 연령인 55세까지 직장에 근무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판결의 확정은 여성 근로자의 권익 보호에 획기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듬해인 1987년 12월 정부는 처음으로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언(法諺)의 가치를 새삼 절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