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의 물줄기를 돌린 성모(聖母)의 순종과 남겨진 과제
인류 타락의 본질은 하나님을 닮은 최초의 여성이자 인류의 조상인 해와(Haewa)를 상실한 사건에 있다. 어머니를 잃은 인류는 ‘부성(父性) 중심’의 문명 속에서 투쟁과 정복의 역사를 써 내려와야 했다. 그러나 하늘은 에덴의 비극 직후, 인류를 다시 낳아줄 생명의 길을 예고했다. 그것이 바로 성서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예언인 ‘여인의 씨’에 관한 약속이다.
◆‘여인의 씨’, 가부장적 혈통주의를 뒤흔든 신학적 파격
창세기 3장 15절은 전통적으로 ‘원복음(Proto-Evangelium)’이라 불리며 구원의 첫 희망으로 간주되어 왔다. “내가 너(사탄)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구원자가 남성의 혈통이 아닌 ‘여자의 후손’, 즉 ‘여인의 씨’를 통해 온다는 선언이다. 히브리어로 후손을 뜻하는 ‘제라(זֶרַע)’는 본래 식물의 씨앗을 의미하며, 성서의 모든 계보가 남성 중심으로 기술된 것과 대조해 볼 때 이는 가히 혁명적인 신학적 파격이다.
역사는 남성의 성(姓)을 따르는 부계(父계) 중심으로 흘러왔으나, 구원 섭리의 설계도는 달랐다. 타락의 통로가 되었던 여성을 다시 구원의 주체로 세워,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과 여성의 순결한 모태를 통해 메시아가 오실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하늘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구약 4천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이스라엘이라는 좁은 땅에서 처절한 ‘혈통 정화’의 역사를 전개하셨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와 같은 여인들이 유대 율법의 잣대를 넘어 생명을 걸고 메시아의 혈통을 보존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오직 ‘독생자’와 ‘독생녀’를 잉태할 수 있는 가장 순결한 모태를 준비하기 위한 하늘의 정성이었다.
◆마리아의 “피아트(Fiat)”, 에덴의 거절을 뒤집다
이 장구한 정화 역사의 결정체가 바로 성모 마리아다. 에덴에서 해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거역함으로써 타락의 길을 열었다면, 마리아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처녀 수태’의 고지 앞에서도 절대적인 순종을 보였다.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마리아가 답한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38)”라는 고백은 라틴어로 ‘피아트(Fiat·이루어지이다)’라 일컬어진다. 이 짧은 응답은 인류사의 물줄기를 돌린 우주적 사건이었다. 해와의 ‘아니오(No)’를 마리아의 ‘예(Yes)’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인류는 비로소 사탄의 참소가 없는 무원죄(無原罪)의 혈통인 독생자 예수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메시아의 강림은 한 여성의 목숨을 건 수용과 모성적 승리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미완의 과제와 2천 년의 기다림
하지만 마리아의 사명은 독생자를 탄생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섭리사적으로 마리아에게 주어진 궁극적 과업은 예수가 성인이 된 후 하늘이 예비한 짝인 ‘독생녀’를 찾아 세워, 이 땅에 ‘참부모’의 이상을 안착시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자신을 ‘신랑’이라 칭하며 ‘어린양 혼인 잔치’를 고대하셨던 이유는, 아버지 홀로 자녀를 낳을 수 없다는 생명의 근본 이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안타까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변 인물들의 불신 속에 예수는 신부(新婦)를 맞이하지 못한 채 십자가의 길을 가야 했다. 이로 인해 영적 구원의 길은 열렸으나, 육신을 입고 실체적인 천국을 건설하려던 꿈은 재림의 시대로 미뤄지게 되었다.
지난 2천 년간 기독교가 성령을 ‘위로자’로 모시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영성’을 이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잃어버린 여성 신성의 실체, 즉 ‘독생녀’를 되찾기 위한 장구한 기다림의 역사였다. ‘여인의 씨’로 시작된 구원의 서사는 이제 마리아가 미처 이루지 못한 완결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에덴의 상처와 마리아의 눈물을 닦고, 인류를 사랑의 논리로 치유할 ‘어머니의 실체적 현현’이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