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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부정’ 손훈모 복귀 논란... 민주당 시스템의 자기부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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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경선으로 공천권 박탈된 인물의 재출마 ‘시스템 공천’ 무력화
당시 수혜자인 김문수 위원장 묵인은 본인 당선 정당성 부정하는 격
“‘경선 부정’으로 공천권이 박탈됐던 인물이 자숙의 기약도 없이 다시 선거판에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지난 제22대 총선 당시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지역구에서 조직적 이중투표 의혹으로 낙마했던 손훈모 변호사의 전남 순천 지방선거 출마 행보를 두고 지역 정가의 비판이 거세다. 특히 이번 사안은 단순한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시스템과 현 지역구 책임자인 김문수 위원장의 정치적 정당성까지 건드리는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손훈모 순천시장 예비후보. 페이스북 캡처
손훈모 순천시장 예비후보. 페이스북 캡처

4일 지역 정가에 따르면 손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계정과 휴대전화로 게시된 이중투표 인증 글에 대해 “교회 예배 중 지인이 내 휴대전화를 가져가 작성했다”고 주장하며 형사처벌을 피했다. 법적 판단은 존중돼야 하겠지만, 이 해명은 음주운전 단속 직전 운전석에서 내려 동승자와 자리를 바꾸는 이른바 ‘운전자 바꿔치기’ 수법을 연상케 한다.

 

행위의 실질적 책임을 흐리고 실행 주체만 바꿔 법망을 피해 가는 방식은 정치적 책임의 회피로 읽힌다. 설령 형사적 책임이 입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선거 캠프와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부정행위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당의 후보를 자처했던 인물이라면 법적 무죄와 별개로 더 높은 기준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문제는 개인을 넘어 정당의 원칙이다. 당시 민주당 중앙당 윤리감찰단은 현지 실사를 통해 조직적 이중투표 행위를 사실로 판단하고 공천권을 박탈했다. 이는 ‘시스템 공천’을 내세워 온 민주당이 당 기강과 경선 질서를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동일 사안으로 중징계를 받았던 인물에게 다시 경선 참여의 문을 열어준다면, 당시 조치는 무엇이었는가. 일시적 여론 수습용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는 가벼운 경고였는지 시민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이를 두고 규정 위반에 대한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한다면 ‘시스템’은 이름만 남고 실제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여론이다.

 

더욱 복잡한 대목은 김문수 위원장의 입장이다. 그는 당시 손 후보의 공천 박탈 이후 후보 자격을 승계받아 당선됐다. 다시 말해 그의 당선은 ‘경선 부정이 확인됐기 때문에 후보 자격이 박탈됐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럼에도 손 변호사의 복귀 움직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의 정치적 기반을 흔드는 셈이 된다. 만약 과거의 부정이 중대하지 않거나 용인 가능한 사안이었다면, 당시의 공천 박탈과 승계 역시 정당성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정당은 사람의 집합이지만, 동시에 원칙의 집합이어야 한다. 민주당이 ‘부정에 엄격한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동일 사안에 대해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특정 인물의 정치적 재기를 막느냐 허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당이 스스로 세운 규칙을 얼마나 무겁게 다루는지의 문제다.

 

순천 시민은 정치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경선 질서를 무너뜨린 전력이 있는 인물의 재등장이 정당의 원칙과 충돌한다면, 그에 대한 분명한 설명과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시스템 공천’도, 정치적 정당성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