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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제5영역] 반 친구 위에 SNS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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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취미 기반 폭넓은 관계 자랑하는 Z세대
외로움조차도 쉽게 털어내는 모습 참 낯설어

얼마 전 아들이 공연 때문에 무대에 섰다. 학생 시절의 연습 같은 공연이었지만 아들에겐 첫 무대라 괜히 나까지 긴장됐다. 관객석이 텅 비면 어쩌나 싶어서 아들이 원치도 않을 아빠 친구들에게까지 “시간 나면 한 번 들르라”며 공연 일정을 돌렸다. 다행히 걱정이 무색하게 객석은 꽤 찼다.

공연이 끝나고 아들은 관객들과 한참 동안 사진을 찍었다. 아들 학교 친구들 아니면 우리 부부가 아는 어른들일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의아한 사람들이 좀 있었다. 나중에 물어봤다.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꽤 먼 곳에서 일부러 시간을 냈다. 평일 늦은 저녁인데 고마운 정성이었다. 함께 사진을 찍던 낯선 어른들은 온라인 역사 커뮤니티에서 알게 됐다고 했다. 나이가 열 살 넘게 차이가 나서 이모라고 부르는 분도 있었는데 친구는 친구였다. 정작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반 친구들은?” 한 명도 안 왔다고 했다. “못 가서 미안해”라는 인사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우리 세대에게 친구란 곧 공간이었다. 같은 반, 같은 과, 같은 직장. 소속과 공간이 그대로 관계가 됐다. 전학 가면 멀어지고, 이직하면 안 만났다. 반면 우리 자식 세대, 이른바 Z세대에게는 좀처럼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 카톡과 인스타가 전학과 이직을 뛰어넘는다. 대학내일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72.3%가 온라인에서만 교류하는 관계가 있었다. 취향과 취미로 만난 친구(47.9%)는 학교 기반 교류(27.6%)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들이 꼽은 친구 수는 평균 15.2명. 부모세대 격인 X세대(8.8명)의 거의 두 배다.

취향으로 연결된 관계는 국경도 넘는다. 중동의 소녀들이 히잡을 쓴 채 케이팝을 따라 부르고, 반일감정이 높다는 한국에선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6만명 이상을 조사한 결과, Z세대는 측정 대상이었던 모든 세대 중 인종적 편견 수치가 가장 낮았다. 취향과 취미 앞에서 피부색과 국적은 뒷전이 된다.

그런데 같은 메커니즘에는 어두운 면도 함께한다. 음악이 좋아서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분노가 좋아서도 모일 수 있다. 케임브리지대 연구에 따르면 인종 관련 태도의 양극화가 가장 심한 세대도 Z세대다. 한쪽에서는 세계인과 어깨동무를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온라인 혐오 커뮤니티에서 증오를 키우다 총기 난사로 폭발한다. 가장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그룹과 가장 폐쇄적이고 극단적인 그룹이 같은 세대 안에 공존한다.

이 두 그룹을 묶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외로움이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웹인덱스(GWI)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80%가 지난 1년간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한 부모세대의 답변은 45%였다. GWI는 이 조사에 ‘Z세대의 외로움 전염병’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폭넓게 연결된 세대가 가장 외로운 세대였던 것이다.

그래도 이 세대에게는 우리에게 없던 게 하나 있다. 외로울 때 외롭다고 소리 낼 줄 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먼 곳까지 찾아간다. 공연 다음 날부터 아들은 매일 하던 연습도 휙 내팽개치고 놀러 나간다며 집을 나섰다. 얼마 안 남은 방학 동안 공연을 찾아온 친구들과 만난다고 했다. 물론 그 이모님도 포함해서. 멀리서 온 사람들을 찾아 멀리 떠나는 모습이 여전히 내겐 참 낯설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