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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서울에 있는 어느 핵 인질의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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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지도자의 죽음 목도하고도
작업복 입고 공장 찾아간 김정은
핵무기 자신감 없인 여유 못 부려
독재자 웃음 접하며 불안한 안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미사일 부대가 아니라 시멘트 공장을 찾았다는 뉴스에 안도했다. 필자는 북한 핵의 강한 중력장 안에 사는 사람, 말하자면 북핵 인질이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김정은 표정에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바로 전날(2월 28일) 집무실에서 이스라엘 공군기 폭격을 받아 죽은 상황을 그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보인다. 2일 자 북한 ‘로동신문’에 나온 사진을 들여다봤다. 하메네이 참수작전에 놀라 핵과 미사일 부대로 숨어 들어간 게 아니고, 생산 현장의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 앞에 섰다. 군복 대신 작업복, 미사일 대신 시멘트가 눈에 띈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하메네이의 죽음을 접한 사람들은, 김정은이 쫄았겠네,라고 생각했으나, 김정은은 이들의 예측을 저버렸다. 김정은이 1일 보인 ‘무심함’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고 신호다. 공격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간 추진해 온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단단한 신뢰를 반영한다. 북한의 핵물리학은 한반도라는 시공간을 왜곡하고 있고, 북핵이라는 거대 질량이 만들어낸 강력한 중력장은 외부 개입이라는 빛의 침투를 어렵게 한다.

미국이 북한 영변의 핵무기 개발 관련 시설을 공격하려고 한 게 1994년이다. 김정은의 아버지가 실권을 쥐고 있을 때이고, 김정은의 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다. 당시 영변에는 5MWe 실험용 원자로와 방사화학실험 시설이 있었다. 원자로는 원자로 연료봉에 들어 있는 우라늄 238을 플루토늄-239로 바꾸었고, 방사화학실험 시설은 원자로에서 꺼낸 폐연료봉에는 재처리해서 플루토늄-239을 끄집어냈다.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팻맨’이 플루토늄-239로 만든 플루토늄탄이었다.

1990년대 시점에서 영변에는 북한 핵 프로그램 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 전쟁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서울이 처참하게 부서지고 수없이 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죽을 수 있는 걸로 나왔다. 그러니 무엇을 얻자고 영변 정밀 타격을 하겠는가? 김영삼정부는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구상에 반대했다. 영변 핵 시계는 째각째각 계속 돌아가는 시한폭탄이었다. 제약받지 않고 돌아간 북한 핵 시계는 북한 독재자에 핵무기란 권력의 방패를 안겼다.

이란과 북한의 운명을 가른 건 완성도 차이다. 이란은 여러 지역에 분산된 시설을 갖고 미완의 퍼즐을 맞추는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걸 파고들었다. 미국이 지난해 6월 이란의 핵시설 여러 곳을 타격했다. 이란은 플루토늄 원자탄 프로그램과 농축우라늄 원자탄 프로그램 두 개를 동시에 돌렸고, 지난해 폭격을 받은 세 곳 중 한 곳인 포르도의 지하 핵 프로그램은 농축우라늄 시설이다. 이란은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연구용 원자로, 방사화학실험실)은 테헤란 핵연구센터(TNRC)에 있다.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 임기 말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한 바 있다. 박정희가 죽은 뒤 권력을 장악한 군인들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 권력의 정당성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는 대가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거래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다. 그 뒤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작은 해프닝이라고 할까라고 할 일은 2000년 당시 원자력연구원에서 0.2g의 우라늄-235를 분리한 거다. 레이저 기술을 이용해 극소량을 생산했다. 정확한 작업 동기는 확인되지 않으나 4년 뒤인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한국은 핵무기는커녕 우라늄 0.2g으로 국제사회 질책을 받고 있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그래서 남한에 사는 필자는 김정은의 핵 인질이 되었다.

필자는 김정은의 얼굴 표정과 동선에 민감하다. 그가 핵과 미사일 공장을 찾았다는 소식을 접하면 긴장하고, 시멘트 공장을 찾았다는 뉴스에는 안도한다. 그의 동선과 필자의 걱정 곡선이 겹친다. 그가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는 이렇게라도 별일 없이 계속 살 수 있을까 하는 거다. 우리는 북핵 ‘중력장’ 속으로 계속 중력 낙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괜찮을까? 중력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 속도를 얻을 수 있을까? 평양 독재자의 웃음을 접하며, 서울에 있는 핵 인질은 불안한 안도를 하고 있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