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이 이란을 전격 공습한 직후, 전 세계의 시선은 공격 버튼을 누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영상 연설을 통해 “미군은 사악하고 급진적인 이란 독재 정권이 미국의 핵심 안보 이익에 대한 위협을 막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대통령을 가졌다”는 자화자찬도 빠뜨리지 않았다.
익숙한 화법이다. 명확한 비난 대상을 정하고 과장된 수사로 공격을 정당화하는 그의 발언을 2024년 대선 이후 수없이 지켜봐 온 탓이다. 하지만 이번엔 등골이 서늘하다. 유세장이 아니라 실제 전쟁의 한복판이고, 그 말 한마디에 수십만의 목숨과 세계 경제의 향방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정작 과장된 수사 아래 가장 궁금한 정보는 없다. 수많은 언론이 전쟁 기간을 물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4~5주로 예상했지만 필요하다면 훨씬 더 오래 갈 수 있다”며 불확실성만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정치계의 이단아’로 불려왔다. 기존 정치언어는 과장을 삼가고 간접 비판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는 이를 정면으로 깼다. 거침없는 자화자찬과 원색적 비난이 가득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반대파에게는 도덕성의 결여로, 지지층에는 기성 정치를 부수는 솔직함으로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관세 국면에서도, 전쟁 국면에서도, 결정적 순간마다 그의 입에서는 늘 모호한 발언이 흘러나왔다. 최강대국 지도자의 확실한 선언을 기다리던 세계가 얻은 것은 불확실성의 증폭뿐이었다.
이런 화법을 통제력을 잃은 막말이나 즉흥적 성정의 표출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언어학자 노먼 페어클러프는 1989년 저서 ‘언어와 권력’에서 ‘인위적 개인화(Synthetic Personalization)’라는 개념으로 이런 화법의 구조를 이미 설명했다.
과장된 표현과 독설로 청중과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히면, 지지층은 대통령의 발언을 공식 정책이 아니라 ‘우리 편의 속내’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가짜 친밀감이 쌓이고 나면, 정작 중요한 정보가 모호하게 처리돼도 대중은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공적 언어가 사유화되는 메커니즘이다.
공적 언어를 사유화한 결과는 명확하다. 권한은 최고사령관처럼 무한대로 휘두르면서, 책임은 모호한 언어 속에 감춰 공적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이란 공격에서도 ‘임박한 위협’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만든 탈출구를 빠뜨리지 않았다. 전쟁권한법상 의회 승인을 우회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조항이 바로 ‘임박한 위협’이다. 강렬한 공격 선언 이후 법적·역사적 책임이 제기되면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빠져나갈 뒷문을 문장 속에 미리 설계해 두는 구조다.
문제는 이 같은 화법이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매뉴얼은 SNS 시대의 알고리즘을 만나 더욱 정교해졌고, 이제는 누구라도 쓸 수 있는 전략이 됐다. 국제 질서의 안정은 물론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도 잠식하고 있다. 이 사유화된 말의 흔적은 한국 정치에서도 흔하게 발견된다. 과연 우리는 설계된 말의 홍수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전쟁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며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