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생명의전화’ 위탁 운영사가 갑자기 변경되면서 시민사회 안팎에서는 뒷말이 무성하다. 십수 년간 현장에서 축적된 위기상담 역량이 단절됐다는 비판과, 전문성·효율성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전환이었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대기업 콜센터로 이관 논란
사회복지법인 생명의전화는 1976년 국내 최초로 위기대응 상담 전화를 개설한 이래 50년간 민간 자살 예방 영역의 대표 기관으로 활동해 왔다. 15년 전 한강교량 투신 사고가 급증하자, 당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박성민 담당자와 생명의전화 길정수 상임팀장은 이준상 소방관과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호주 시드니 갭 파크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119 구조 중심의 신고 체계에 상담 기능을 접목한 ‘SOS생명의전화’를 구축했다. 길 전 팀장은 “죽을 각오로 다리 위까지 올라간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 작은 끈을 붙잡게 해주는 것이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이 사업의 위탁운영 주체가 시민단체 생명의전화에서 대기업 계열사 효성ITX로 교체됐다. 표면적으로는 사업 확대 방향을 둘러싼 이견이 원인이지만, 그 이면에는 오랜 기간 누적된 양측 간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4일 양측의 설명을 종합하면, 갈등의 불씨는 지난해 10월1일 서울 성북구 생명의전화 사무실에서 열린 2026년도 사업 운영 회의에서 시작됐다. 재단 측이 생명의전화 내부에 있던 상담실을 외부로 옮기고 원격관제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을 처음 제시하면서부터다. 생명의전화는 내부 논의를 거쳐 같은 달 30일 환경 변화와 시스템 전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사업 종료 의사를 전달했다. 재단 측은 11월 도급기관 3곳을 대상으로 제한경쟁 입찰을 진행했고, 12월1일 효성ITX를 위탁운영 계약사로 선정했다. 예산은 연간 10억원 안팎 규모다.
생명의전화 측은 “사업의 지속과 협력을 희망했으나 계약 기간 및 조건 변경, 운영 협의 방식에서 견해 차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더 큰 규모의 공간으로 이관해 사업을 확대하고 싶었으나 생명의전화 측이 어렵다고 해 다른 수행기관을 찾게 된 것”이라고 했다.
상담 인력의 전문성을 둘러싼 시각 차이도 뚜렷하다. 재단 측은 새 운영사 인력이 상담 관련 전공자와 자격증을 보유한 경력직 전문 상담사로 구성돼 전문성이 강화됐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생명의전화 관계자는 “우리 상담원들은 단순 운영 인력이 아니라 엄격한 전문 교육을 이수하고 ‘생애위기상담사’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라며 “헌신적으로 구조 현장을 지켜왔다”고 반박했다. 생명의전화는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사업 종료를 알리면서 “이후 동일 명칭의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생명의전화 소속 전문 상담원의 서비스가 아님을 알려드린다”고 선을 그었다.
◆“민간 헌신 상실” vs “전문성 강화”
SOS생명의전화 24시간 상담사는 자원봉사자 30명에서 자격을 갖춘 콜센터 상담사 11명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자살 예방 사업이 소규모 비영리 기관에서 대형 기관 중심 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구조적 충돌로 진단하면서 자칫 인명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칠 가능성을 경계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민간에서 시작한 사업에 예산이 투입되고 제도가 정비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민간 특유의 헌신적 정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분명히 있다”며 “바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자살유가족 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는 직설적으로 꼬집었다. 그는 “정부나 기관들은 민간이 잘하는 걸 못 본다. 처음에는 민간에 위탁했다가 사업이 자리 잡으면 그 사업을 가져가는 일이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자살 예방 사업을 진행하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강 교량 위에 추락 방지 시설이 많이 설치된 만큼 이제 자살 예방 사업도 전화 상담에서 다른 방향으로 성격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며 “이미 다수 기관에서 온라인 채팅으로 자살 예방 상담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 생명선은 숙련된 자원봉사자 중심
선진국에서는 교량과 절벽 등 자살 고위험 현장의 상담 전화를 자원봉사 기반 비영리 단체가 맡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과 호주다. 이들 국가에서는 한강 교량 위 생명의 전화처럼 정부나 지자체가 소유한 공간에 상담 전화를 설치했다. 실제 상담 운영은 민간 비영리 단체가 담당한다.
금문교는 ‘금문교 특별구’라는 독립 공공 법인이 관리하지만, 자살 예방 상담 운영은 비영리 단체 디디 허시(Didi Hirsch)와 샌프란시스코 자살예방센터가 담당한다. 디디 허시는 100시간 이상의 수련을 거친 고숙련 자원봉사자가 상담을 수행하고 유급 전문가가 이를 감독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절벽 공원 갭 파크 역시 지자체와 주 정부가 관리하지만, 상담은 위기지원 민간단체 ‘라이프라인’이 맡는다. 위기 지원 담당자가 되기 위해선 75시간의 상담 교육과 2개월간의 현장 실습, 이후 9개월의 자원봉사 인턴십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국 브리스톨의 클리프턴 현수교도 유사하다. 교량은 비영리 재단이 소유하고 있지만, 자살 예방 상담은 민간단체인 ‘사마리탄스’가 맡는다. 이 단체 역시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24시간 상담을 운영한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상담 전문성과 시민 사회 참여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