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 야구에 환희와 쓰라린 아픔을 함께 준 대회다. 2006 초대 WBC에서 한국은 본선 1, 2라운드 6전 전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본선 1, 2라운드에서 ‘숙적’ 일본에 연달아 승리하며 도쿄돔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세리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다시 만난 일본에 패해 4강에 머물렀지만, 과소평가됐던 KBO리그의 위상을 드높였다. 2008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에 이어 2009년 2회 WBC에서도 한국 야구는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올랐고, 비록 일본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두 번의 WBC와 올림픽을 통해 한국 야구는 세계무대를 호령했다.
그러나 2013년, 2017년, 2023년까지 세 번의 WBC는 ‘타이중 참사’, ‘고척돔 참사’, ‘도쿄돔 참사’ 등 ‘참사’라는 키워드로 점철됐다. 앞선 대회와 달리 고전을 면치 못하며 본선 1라운드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었기 때문. 특히 2017 WBC에서는 고척돔 홈에서 열려 이스라엘, 네덜란드, 대만 등 한 수 아래 전력의 팀들과 A조에 편성됐지만, 1승2패로 3위에 머물렀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앞선 세 번의 WBC 참사가 벌어진 건 첫 경기에 모두 패한 게 컸다. 2013 WBC에선 네덜란드에 0-5로 패했고, 2017 WBC는 이스라엘에 연장 10회 1-2 패, 2023 WBC에서도 호주에 7-8로 패했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했던 팀들과 치른 첫 경기에서 패하면서 계획이 꼬였고, 결국 조 2위 안에 드는 데 실패했다.
2026 WBC에서 17년 만의 본선 1라운드 통과 이상의 성적을 노리는 ‘류지현호’의 첫 번째 과제는 간단하다. 앞선 세 번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5일 오후 7시 도쿄돔에서 열리는 2026 WBC C조 조별리그 첫 경기인 체코전을 반드시 이기는 것이다. 한국은 이번 1라운드에 체코, 일본, 대만, 호주와 한 조에 속했다. 조 2위까지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8강 토너먼트에 나설 수 있다.
체코는 C조에서 객관적인 전력상 최약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선수는 한 명도 없고, 선수층의 깊이나 경험도 다른 4개 나라와 격차가 존재한다. 최근 투자를 확대해 아시아 3개국과의 평가전, 일본프로야구 2군, 미국 독립리그 등에서 해외파를 육성하며 유럽에선 야구 강국으로 올라서고 있지만, 전력상 한국이 두세 수는 위다. 지난해 11월 열린 ‘2025 K베이스볼 시리즈’에서도 고척돔에서 두 차례 맞붙어 한국이 1차전 3-0, 2차전 11-1 대승을 거두며 압도했다.
선발진 ‘원투펀치’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됐던 원태인(삼성), 문동주(한화)에 마무리를 맡을 예정이었던 라일리 오브라이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까지 부상으로 낙마해 투수진의 깊이가 얕아진 한국은 체코전 선발을 KT의 토종 에이스 소형준에게 맡긴다.
변형 패스트볼을 주무기로 하는 소형준은 땅볼 유도에 특화된 투수다. WBC 본선 1라운드에선 선발투수의 투구수가 65구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3구 이내에 범타를 유도할 수 있는 소형준은 최대한 이닝을 끌어줄 적임자다. 류 감독은 4일 도쿄돔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2, 3일 평가전에서 뛰지 않은 소형준과 정우주(한화)가 체코전을 초반부터 잘 끌어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KBO리그 3년 차인 2022년 13승6패 평균자책점 3.06을 기록하며 정상급 선발투수로 거듭난 소형준은 2023년 5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수술 이후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른 소형준은 이닝 관리 속에서도 147.1이닝을 던지며 10승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3.30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소형준은 “우선 첫 경기 선발로 믿고 내보내 주신 만큼 책임감을 갖고 던지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얕아진 마운드로 인해 타선으로 승부를 봐야 할 ‘류지현호’는 일본프로야구 한신, 오릭스와의 연습경기를 통해 타격감 점검을 마쳤다. 주축이 되어줘야 할 선수들이 손맛을 본 게 고무적이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2024년 KBO리그 최우수선수(MVP)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김도영(KIA)은 이틀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쾌조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지난 시즌 신인왕 안현민(KT)도 3일 오릭스전 9회 솔로포로 예열을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