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꽉 맞던 바지 종아리 부분이 헐거워진 걸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9일 서울 용산구의 한 피트니스 센터에서 만난 이모(64) 씨의 고백이다. 근육이 빠져나간 자리를 나잇살이 채우는 노년기, 가늘어지는 종아리는 단순한 외형 변화가 아니라 건강 경고 신호일 수 있다.
내 종아리는 안전할까. 양손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어 종아리 가장 굵은 부위를 감싸는 ‘핑거링 테스트’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손가락 원보다 종아리가 가늘어 헐렁하게 남는다면 근감소증 위험군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
숫자는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2022년 기준)’에 따르면 한국 70대 이상 여성의 약 60% 안팎은 하루 단백질 평균필요량(EAR)을 채우지 못했다.
대한근감소증학회 분석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령층의 근감소증 유병률은 약 10~20% 수준으로 보고된다. 하체 지지력이 약해지면서 낙상 위험이 약 1.5~2배 증가하고, 고관절 골절이 발생하면 1년 내 사망률이 15~30%에 달한다.
그렇다면 왜 노년의 얇아진 종아리가 위험 신호일까. 수면 시간은 체내 영양소 공급이 끊기는 가장 긴 공복 상태다. 혈중 아미노산 농도가 떨어지면 우리 몸은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근육 단백질을 분해한다.
가뜩이나 부족한 근육이 밤사이 더 쉽게 분해될 수 있다는 의미다. 보충제 통을 만지작거리며 “자기 전에 먹으면 다 살로 가는 것 아닐까” 망설이는 이들에게 과학은 취침 전 ‘전략적 영양 보충’이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수면 중 근육 지키는 20~40g의 비밀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교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Nutrient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병행한 성인이 취침 전 ‘카제인’ 단백질 20~40g을 섭취했을 때 수면 중 근육 단백질 합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위장에서 젤리처럼 변해 천천히 소화되는 카제인이 밤새 아미노산을 공급해 야간 근육 분해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취침 전 단백질 섭취 전략이 근육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우유 대신 ‘달걀흰자’와 ‘요거트’인가
그렇다면 흔한 우유를 마시면 될까. 우유 100ml당 단백질은 약 3.2g이다. 단백질 20g을 채우려면 자기 전 약 600ml 이상을 마셔야 한다. 고령층에게는 야간뇨를 유발해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수면 부족은 코르티솔 분비를 늘려 근육 분해를 촉진할 수 있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전문가들이 그릭요거트나 코티지치즈, 삶은 달걀흰자 조합을 권하는 이유다.
카제인이 풍부한 유제품에 개당 약 3.6g의 단백질을 함유한 달걀흰자를 곁들이면 비교적 적은 양으로도 아미노산을 보충할 수 있다.
◆단백질 섭취가 바꾸는 ‘노년의 발걸음’
최근 식단에 그릭요거트와 달걀을 추가한 박모(72) 씨는 “다리에 힘이 없어 외출을 꺼렸는데 요즘은 혼자 시장에 다녀올 만큼 걸음걸이가 단단해졌다”며 “작은 식습관 변화가 생활 반경을 넓혀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경제력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고령층의 단백질 섭취 미달률이 높아지는 ‘영양 격차’ 현상이 나타난다. 저소득층의 단백질 부족률이 고소득층보다 약 15%포인트 높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가늘어지는 종아리는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지금 관리하라는 몸의 신호일 수 있다.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무릎과 종아리에 전해지는 단단한 힘. 그것은 어젯밤 무심히 넘기지 않고 챙긴 단백질 한 스푼이 만들어낸 작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