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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의 선견지명] 방배동과 사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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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은 필자가 청년기에 전세를 살던 곳이라 친구들에게 농담삼아 ‘방 빼!’동에 산다고 했었지만, 기실 그 지명 어원이 녹록지 않다. ‘방배(方背)’의 한자가 ‘모 방(方)’자에 ‘뒷 배(背)’자이다 보니 ‘한강의 한쪽 모퉁이 뒤쪽 마을’이라는 민간 해석이 생기기도 하였지만 흔히 인근에 있는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온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방배동의 어원은 이보다는 인근의 관음사(觀音寺, 남현동에 위치) 앞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을 가리키던, 승방뜰(지금의 사당동 지역)의 이칭인 ‘신방뜰’과 연관이 있다. “‘신방뜰(즉 승방뜰)’의 뒤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방배(方背)’라 했다는 것이다.

 

‘승방뜰’은 ‘조선지지자료’(1911, 조선총독부)에 한자로 ‘僧房坪(승방평)’으로 기록되어 있고 ‘한국지명총람’(1965, 한글학회)에는 ‘승방평(僧房坪)’의 풀이에 “마을 뒷산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어 곧 관음사 앞 들에 있는 마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즉 관음사 앞 들판을 승방이 있는 들판이라는 뜻에서 승방평(僧房坪)이라 하였는데 그 뒤편에 있는 마을을 ‘승방뒷골’이라 하였고 이 말 중 ‘뒷’이 한자화되어 ‘(승)방배골’이 되었다가 다시 ‘골’이 한자화되어 ‘(승)방배동((僧)方背洞)’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승(僧)’을 의식적으로 배제한 결과 ‘방배동’이 되었지만 ‘승방의 뒤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뒤쪽 마을’이 어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승방뜰 근처에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도당(都堂)’이 있어서 이곳에서 오랫동안 마을굿(즉 도당굿)이 이어져 왔다. 이 도당을 담당하는 집을 ‘당집’이라 하고 한자로는 ‘堂舍(당사)’라 하였는데 ‘사당동(舍堂洞)’이라는 동명은 바로 이 도당(都堂)을 주관하는 당사(堂舍)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당사골’에서 바뀐 지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사골이 어떤 이유로 ‘사당골’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방배골’이 방배동이 되는 맥락에서 ‘사당골’도 사당동이 되어 지금에 이른다. ‘방배동’는 승방평 뒷 동네를 가리키는 ‘승방뒷골∼승방배동’에서 온 말이고 ‘사당동’은 승방평 근처 도당굿을 담당하는 당골이 있는 마을인 ‘당사골∼당사동’에서 온 말인 것을 보면 이 두 마을의 이름은 각각 불교와 무속이라는 두 축의 우리 옛 민속의 문화가 땅이름에 감춰진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스름 저녁 정금마을 언덕바지에 세워진 경문고에서 내려다보면 사당동∼방배동으로 이어진 넓은 지역 곳곳에 붉은 십자가 불빛이 넘쳐나 여전히 신앙 가득한 땅임을 알 수 있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