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그릭요거트를 ‘빠다코코넛’ 과자 사이에 두툼하게 펴 바른다. 밀폐 용기에 담아 하룻밤 냉장 숙성하면 끝이다. 다음 날 아침, 바삭했던 과자는 요거트의 수분을 머금어 케이크 시트처럼 부드러워지고 요거트는 크림치즈처럼 꾸덕한 질감으로 변한다.
베이킹 도구 하나 없이 편의점 재료만으로 완성되는 이 ‘노오븐 치즈케이크’가 지금 MZ세대 사이에서 화제의 디저트로 떠올랐다. 화려한 카페 디저트 대신 편의점을 택하는 이면에는 팍팍해진 지갑 사정이 자리한다.
7일 국가데이터처 소비자물가 조사(2024년 기준)에 따르면 외식 물가 상승률은 3.1%를 기록하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관 가구 통계(2024년 기준)에서도 1인 가구 비중은 36.1%(804만 가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커피 한 잔 비용마저 부담스러워진 상황에서, 소규모 가구의 발길이 간편하고 저렴한 편의점으로 향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SNS 타고 번진 ‘편의점 꿀조합’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편의점 꿀조합 레시피’가 폭발적으로 확산 중이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하는 과자와 유제품을 조합해 고급 외식 메뉴를 저렴하게 복제하는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레시피가 일명 ‘요치케(요거트 치즈케이크)’다. 편의점 판매가 기준 5000원 안팎 재료비로 한 판 분량을 만들 수 있다. 주요 디저트 카페의 치즈케이크 한 조각 가격이 평균 6000~9000원대인 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 비용으로 비슷한 미각적 만족감을 얻는 셈이다.
SNS에는 “성수동 카페에서 5만원에 팔 것 같은 맛” “가성비 디저트 끝판왕” 등의 생생한 후기가 쏟아진다. 크림치즈나 카카오가루를 더하는 등 자신만의 변주를 가미한 레시피도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레시피 유행, 실제 매출로 이어져
온라인의 유행은 오프라인 매장의 진열대 풍경까지 바꿨다.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 점주 김모(43) 씨는 “빠다코코넛과 그릭요거트를 세트로 구매하는 2030 손님이 확연히 늘었다”며 “레시피 유행 직후 관련 상품 발주량을 평소보다 1.5배 이상 늘려 꽉 채워두고 있다”고 말했다.
연관 구매를 자극하는 레시피는 이뿐만이 아니다. ‘연세우유 생크림빵’을 에어프라이어에 180°C로 5분간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차가운 상태로 즐기는 방식이나, 편의점 밀크쿠키에 즉석 원두커피 에스프레소 샷을 부어 ‘5분 완성 티라미수’를 만드는 조합도 인기다. 이러한 흐름은 특정 상품의 단독 매출에 그치지 않고 디저트, 과자, 즉석커피 등 이종 상품 간의 동반 상승 효과를 일으키며 편의점 매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2월 23일까지 빠다코코넛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7.5% 증가했고, 그릭요거트 매출은 98.2% 증가했다. GS리테일 역시 박카스와 얼음컵,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얼박사’ 레시피가 히트하자 정식 상품으로 단독 출시하며 발 빠르게 대응했다.
◆일상 지키는 ‘모디슈머’
유통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모디슈머(modisumer)’ 트렌드의 대표 사례로 본다. ‘수정하다(modify)’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기존 제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즐기는 소비자를 뜻한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은 고물가 시대에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나만의 레시피’를 설계하며 소비 경험의 질을 스스로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물가 부담 속에서도 최소한의 미각적 즐거움과 경험재를 누리고자 하는 영리한 대안 탐색이 편의점을 통해 발현되는 셈이다.
“저렴하게 한 끼 때운다”는 과거의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남은 그릭요거트 재고를 살피고, 과자 매대에서 빠다코코넛을 장바구니에 담는 청년들. 오늘 밤 이들의 냉장고 속에서 하룻밤 숙성될 5000원짜리 치즈케이크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일상의 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치열하고도 달콤한 생존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