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남정훈 기자] ‘사무라이 재팬’의 상징이자 리더인 오타니 쇼헤이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비단 야구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혼자서 ‘만화야구’를 하는 듯한 비상식적인 야구 실력이 기본 베이스다. 거기에 상대를 존중하는 배려와 예의범절까지, 인간성 자체도 만화적이기 때문에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이다.
7일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서 동점 솔로포 등 2타수 2안타(1홈런) 2볼넷 1타점 3득점의 맹활약으로 일본의 8-6 승리를 이끈 뒤에도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경기였다”며 한국을 높이 평가하는 모습이었다.
천하의 오타니마저도 이렇게 겸손하고 깍듯한데, 이번 WBC에서 일부 일본 팬들과 일본 기자, 조직위는 예의 따위는 밥 말아먹은 듯한 태도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한일전이 끝나고 믹스트존 인터뷰까지 마친 뒤 다시 기자석에 합류했을 때 조직위 직원이 취재진에게 공지사항을 적은 A4 한 장을 전달했다. 내용은 “천황 폐하가 8일 어느 시간대(밝힐 수 없음) 도쿄돔을 방문하니 관계자 출입구에서 VIP 게이트 구간으로의 통행을 전면 금지한다”라는 통보였다.
일본이 그들의 군주를 천황이라 부르니 천황이라는 단어까지는 그렇다 치자. 폐하까지 써야했나. 공지문은 다양한 언어로 되어 있었다. 일본어로 되어있는 공지문에 ‘천황폐하’라고 썼으니 한국 취재진이 제대로 읽어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서 이런 단어를 썼을지도 모른다고 이해해보려고 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국가 취재진이 보는 공지문에 천황 폐하라는 단어를 꼭 써야했을까. 일본인들에게나 천황 폐하지, 본 기자 같은 한국인에겐 그저 일본의 군주일 뿐인데...일왕이라고까지는 부르지 않겠다.
이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는 더 있었다. 이날 도쿄돔 관중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일본팬 중 일부는 일본의 공식 국기인 일장기가 아닌 욱일기를 들고 도쿄돔에 입장했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일본을 상징하는 욱일기라니. 그것도 자신들이 식민지로 삼았던 한국을 상대로 하는 경기에. 이는 상대팀인 한국을 존중하는 마음이 전혀 없고, 과거에 대한 반성도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팬들을 제지하는 조직위 차원의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본 취재진 중에도 몰지각한 이들을 볼 수 있었다. 한일전 2시간 30분전부터 시작된 김혜성, 류지현 감독과의 공식 기자회견에 오타니의 이름이 마킹된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버젓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왔던 일본인 기자도 있었다. 일본 기자들도 일본을 응원하는 건 당연하다. 본 기자도 한국 대표팀을 응원한다. 그래도 명색이 기자면 다수 국가 취재진이 모인 장소에서만큼은 중립적인 척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닐까.
게다가 한일전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일부 일본 기자들은 예민한 질문을 거듭 던졌다. 일본 매체의 한 기자가 ‘지난 3년 전에는 일본에 대패를 당했던 한국이 오늘은 접전을 치렀다. 3년 전과 비교해 한국과 일본의 레벨 차이가 어떻게 달라졌나 생각하느냐’라고 류 감독에게 무례한 질문을 던졌고, 류 감독이 “이 자리에서 2023년 WBC를 언급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답했지만, 일본 취재진은 다시 한 번 “2024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은 일본에 9연패를 당했다. 일본과 한국 야구의 레벨 차이는 어떻게 됐다 보느냐”고 재차 질문은 던졌다. 류 감독은 “오늘 경기만 이야기하겠다”라고 답변을 피했다.
당신들이 보유한 슈퍼스타가 ‘야구의 왕’, ‘야구의 신’이라 불리면 뭐하나. 일부 몰지각한 팬과 취재진 때문에 타국 취재진과 팬들은 일본 야구에 대한 반감만 사는데. 당신들이 일본 야구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먹고 있음을 직시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