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국제 원유 가격이 43년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하면서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금융시장에 가해졌던 1차 충격이 실물경제로 전이될 경우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며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0%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중동 사태는 한국 원유 수급에 직접 영향을 주는 만큼, 장기화하면 연간 물가상승률이 5%를 넘어섰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보다 파장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6일(현지시간)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한 주간 35.63% 급등했다. 집계가 시작된 1983년 이후 역대 최대폭이다. 이날 WTI는 전장 대비 12.21% 폭등한 배럴당 90.90달러에 마감하면서 90달러선을 돌파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5월물도 주간 기준 28% 뛰었는데, 2020년 4월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6일 종가는 92.96달러를 기록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수출길이 막힌 산유국들은 원유 저장시설 포화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쿠웨이트 국영 석유회사 KPC는 7일 “원유와 정제 처리량을 감축한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현 생산량을 유지할 경우 쿠웨이트 저장시설이 12일 내 가득 차게 된다고 전했다. 이라크도 원유 생산량을 하루 150만배럴 감축했다.
원유 수급 불안 우려가 커지면서 당초 낙관적인 전망치를 제시했던 한국 경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앞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지난해(1.0%)의 두 배인 2.0%를 제시했다. 그러나 중동발 원유 수급 불안이 물가를 자극하고, 더 나아가 성장률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호르무즈해협이 수개월간 봉쇄되는 경우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내외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사태가 심각해져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뛰는 경우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은 2.9%포인트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중동 사태 이전부터 밀가루·설탕·계란 등 민생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유가가 오름세를 유지할 경우 시장에 전이되는 충격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022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치솟았다.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어서고 물가가 연쇄적으로 치솟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0% 오르며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에 준했지만, 중동 사태에 따른 영향은 이달부터 본격 반영될 전망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는 “이번 사태로 원유 생산 시설이 타격을 입은 만큼 유가가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상승한 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되겠지만, 물가가 한번 치솟기 시작하면 억제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 ‘눈치 보기’로 제품가격에 반영되지 못한 원가 상승분이 향후 한꺼번에 현실화하면서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역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 사태로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9일 오전 11시 ‘경제 및 물가 상황 점검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한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중동발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과 유가의 변동 상황, 증시와 환율 등 국내 경제 상황과 석유류 등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