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8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강원 영월 청령포는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청령포를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2시간 이상 대기해야 할 만큼 ‘유배지 답사’가 주목받는 가운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역사적 발자취를 남긴 조선시대 또 다른 유배지들을 살펴봤다.
◆정약용의 유배지, 고난을 학문으로 승화시킨 ‘다산초당’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1762~1836년) 선생의 유배지다. 조선시대 후기 대표 실학자인 다산은 1801년 강진에 유배돼 약 18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중 10여년을 이곳 다산초당에 머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을 비롯해 600여 권의 책을 집필해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다산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정조가 서거하자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신유사옥’(1801년)에 연루돼 40세에 유배형을 받게 된다. 오늘날 경북 포항과 전남 강진 사의재 등을 거쳐 1808년 이곳 다산초당으로 오게 된다.
초당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억새나 짚으로 엮는 소박한 집이었으나 1936년 노후로 붕괴한 것을 1957년 강진 다산유적보존회가 목조 기와로 복원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유배를 보내라, 나는 걸작을 남길 테니’ 추사 김정희 유배지
제주도 서귀포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년) 선생이 1840년부터 약 9년간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유배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유배지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소실되어 빈터만 남았었으나, 1984년 고증을 거쳐 복원됐다.
55세의 나이에 ‘윤상도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로 내려오게 된 추사는 이곳에서 본인만의 독특한 서체인 ‘추사체’를 완성시켰으며, 올곧은 선비 정신이 담겨있는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
세한도는 ‘추운 시절 그림’이라는 뜻으로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물기를 뺀 붓으로 한 채의 초가집과 두 그루 고목이 그려져 있다. 스산하고 적막한 겨울 분위기가 느껴지며 당시 유배를 내려온 추사 내면의 정취와 심경이 잘 표현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폭정의 끝은 유배…연산군의 마지막은 강화 교동도
인천 강화군 교동면에 있는 연산군 유배지에는 유배 당시 모습과 그가 머물던 초가집이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다. 조선 제10대 임금인 연산군은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등 폭정을 일으켜 중종반정에 의해 왕위에서 폐위됐다. 이후 연산군은 교동으로 유배돼 이곳에서 1506년 사망했다.
연산군뿐만 아니라 안평대군, 광해군과 광해군의 동생 능창군,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도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해 ‘왕족들의 유배지’라는 평을 받는다.
세종의 아들이자 세조의 동생이기도 한 안평대군은 계유정난으로 인해 강화도로 압송됐다가 며칠 후 교동도로 이송돼 사사됐다. 안평대군은 이후 시신이나 무덤이 발견되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