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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성’ 기준도, 정부 지침도 모호… 현장은 ‘폭풍전야’ [심층기획-노란봉투법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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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엇갈린 희비

원청 기업 사용자성 인정범위 확대
불명확한 지침에 현장 혼란 불가피
勞, 안전·보건 등 교섭 지렛대 삼아
임금 인상·처우 개선 등 압박 태세
使 교섭 땐 경영 간섭·불법 자인 꼴

사외 협력사까지 확산 시 분쟁 봇물
‘부당노동행위’ 고발·파업 남발 우려
정부는 “대화로 상생 해법 찾아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 2·3조 개정안)과 관련한 고용노동부 지침을 보면 ‘임금’을 이유로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받는 건 사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이게 인정되려면 원청 기업이 하청 근로자의 임금 책정 등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현장은 찾아보기가 어렵거든요. 결국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사례의 대부분은 ‘안전·보건’과 ‘작업 환경’ 문제일 텐데, 문제는 실제 교섭에선 하청 노조가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주요 의제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10일 시행되는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재계 인사 A씨는 정부의 불명확한 지침과 노조의 교섭 확대 움직임이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일부 노조가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원청 기업에 임금 협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하청 사측이 하청 근로자에게 임금을 주는 상황에서 원청이 협상 의제로 받아주게 되면 하청에 대한 경영 간섭이 될 뿐 아니라 불법 파견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A씨는 “노조가 교섭 테이블에 추가 안건을 올리는 경우 정부는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며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며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산업 현장의 혼란은 극심해지고 법적 분쟁이 빈발해 수많은 판례가 쌓일 때까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거리에서 택배 기사들이 배달을 하고 있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동자 간 교섭을 가능하게 하고,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로 생긴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라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플랫폼 노동자들도 원청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뉴스1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법률) 시행을 하루 앞둔 9일 서울 거리에서 택배 기사들이 배달을 하고 있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동자 간 교섭을 가능하게 하고, 노동자의 파업 등 쟁의행위로 생긴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라 대부분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플랫폼 노동자들도 원청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뉴스1

◆정부 지침 ‘구멍’…현장 혼란 불가피

노란봉투법과 정부 지침은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에게 ‘실질적·구조적 지배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사용자성 인정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원청이 구체적인 업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하청에 하달하고 관리·감독하는 사례가 해당한다. 본사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내 하청’ 근로자의 작업환경에 대해선 본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사외 하청’이다. 현대차·기아만 해도 1차 협력사는 300여개, 2·3차 협력사는 5000여개에 이르는데 대부분 사외 하청이다. 기업들은 각자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외 하청 노조까지 교섭권을 주는 건 무리라는 입장이지만, 이들이 교섭을 요구하면 노동위원회에서 다툴 수밖에 없다. 협력사가 많은 기업일수록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릴 수 있는 셈이다. 앞서 지난 1월 원청 기업에 일제히 교섭을 요구한 금속노조는 10일 교섭 촉구 공문을 다시 보낸다고 밝혔다. 현대차·기아와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이 대상이다.

교섭 시 임금 문제를 둘러싼 기업과 노동계의 입장차는 노란봉투법이 촉발할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기업의 노무팀 관계자는 “원청이 지침을 통해 개입·관리하는 분야는 주로 안전과 작업 환경에 대한 것”이라며 “안전 분야에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정부는 그 안건에 대해서만 교섭하도록 권고했지만, 현장에선 일단 교섭 테이블이 마련되면 원청 권한이 아닌 임금 인상이나 고용 보장 등 경제적 처우 개선까지 요구할 분위기”라고 했다.

실제 한화오션 협력사인 웰리브 직원들은 지난달 25일부터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과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거제조선소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구조개편 작업이 한창인 석유화학 업체들과 사옥 이전을 추진 중인 HMM 같은 곳도 노조 입김이 세질 것”이라며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지금보다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업·부당노동행위 고발 폭증 우려

재계는 앞으로 파업과 원청 사주를 대상으로 한 부당노동행위 고발도 증가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작업환경 문제로 교섭하게 됐는데 하청 노조가 자신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납품 단가를 인상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원청이 당초 교섭 대상이 아닌 안건에 불응하면 하청 노조나 그 상급 단체는 교섭 결렬을 이유로 파업하거나 ‘부당노동행위’를 주장하며 원청 사주를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하청 노조가 원청 사주를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할 수 없었지만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그 길이 열렸다.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되면 2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재계는 사용자성을 다투는 과정도 노조에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기업 소속 노무사 B씨는 “법원에선 원청의 실질적 지배 여부를 따질 때 보통 현장 조사를 포함해 수개월간 조사를 하는데 노동위원회는 20여일 보고 판단을 하게 돼 있다”며 “기업이 불복해 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 수사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말했다. B씨는 “하청 노조가 10개를 요구한 경우 그중 안전 문제 하나만 사용자성이 인정돼도 교섭에 응하라는 건데, 일단 교섭 테이블이 마련되면 임금 이야기를 안 하겠느냐”며 “그런데도 정부는 추가 안건에 대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라며 뒷짐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노란봉투법 시행 준비 상황을 점검하는 내부 회의 자리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노사)갈등 상황을 지나치게 우려하기보다 노사 간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경영계는 교섭을 회피하기보다 대화와 책임 있는 자세로 상생의 해법을 찾는 노력을, 노동계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절제와 타협의 자세로 대화에 임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