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0.3% 증가하는 데 그쳐 3년째 3만6000달러대에 머물렀다. 4만달러대에 진입한 대만, 3만8000달러대로 추정되는 일본에도 추월당했다. 원화 기준 1인당 GNI는 4% 넘게 늘었지만, 고환율 탓에 달러로 환산한 국가 간 비교에서는 뒷걸음질 쳤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025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명목 GNI는 3만6855달러로 전년(3만6745달러)보다 0.3% 증가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5241만6000원으로 1년 전(5012만원)보다 4.6% 늘었다. 지난해 고환율로 인해 원화보다 달러 기준 증가율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한국의 달러 기준 1인당 GNI는 2014년 처음 3만달러(3만798달러)에 진입해 2021년 3만7898달러까지 불었다. 이듬해 원화 가치 하락으로 2600달러 넘게 줄었다가 2023년 3만6195달러로 증가한 후 2024년(3만6745달러)에 이어 올해까지 3년째 3만6000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일본과 대만의 1인당 GNI는 지난해 한국을 추월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화용 한은 국민소득부장은 “2025년 대만의 1인당 GNI는 전년 대비 14.2% 증가한 4만585달러로 우리보다 높았다”며 “IT(정보기술) 제조업 비중이 우리보다 3배 높아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크게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일본도 3만8000달러 초반으로, 우리보다 높아졌다”며 “지난해 12월 기준년 개편에 따라 경제 규모가 확대된 영향”이라고 전했다. 기준년 개편은 최신 경제구조를 반영하기 위해 일정 연도마다 경제총조사를 토대로 비교 기준 연도를 교체하는 것으로, 통상 새 산업이 추가돼 경제 규모가 늘어난다.
2024년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 한국의 1인당 GNI는 유엔 집계를 기준으로 6위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가 한국보다 많았다. 한국의 1인당 GNI는 줄곧 일본에 뒤지다 2023년, 2024년 2년 연속 앞섰으나 지난해 다시 따라잡혔다. 대만의 경우 2003년 이후 한국이 앞섰으나 지난해 역전당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만과 근본적으로 격차가 벌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최근 대만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많이 빠지는 등 TSMC가 고점이라는 신호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올해 수출 전망치가 견조하고 내수 업종의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추세인 데다 가계임금 상승률도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이 1400원대 초반으로 내려오면 다시 순위가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 국민소득이 11년간 3만달러대에 머무는 가운데 한은은 2027년 4만달러 진입을 전망했다. 김 부장은 “2014년 3만달러 달성 이후 1인당 명목 GNI 성장률이 4.4% 정도였기에 앞으로 환율의 영향이 0이라 가정하고 올해·내년 4.4% 성장한다면 2027년에 4만달러를 넘게 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원화 기준(2663조3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2% 증가했다. 달러 기준(1조8727억달러)으로는 0.1% 뒷걸음쳤다. 지난해 실질 GDP 잠정치는 전년보다 1.0% 증가로, 앞서 발표된 속보치와 같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보면 속보치 0.97%에서 1.01%로 높아졌다.
GDP디플레이터는 2024년보다 3.1% 상승했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으로, 수출입 등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물가 지수다.
다만 김세직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의 장기성장률은 하락세에 있다고 진단했다. 장기성장률은 연간 성장률 10년 정도의 평균치로 단기적인 경기 변동 요인을 제거한 근본적인 성장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김 원장은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 왔다”며 “2025년에는 장기성장률이 0.9% 수준으로 추정되면서 처음으로 0%대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030년에는 장기성장률이 -0.1%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한국의 실질 GDP가 2029년 정점을 찍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원장은 정권마다 건설경기 부양과 저금리 정책, 대출규제 완화 등의 총수요부양책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론 장기성장률 하락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증가와 아파트 폭등과 같은 ‘가짜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