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으로 원유 수급 시장의 불안이 고조되면서 국내 정유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원유 공급 자체가 막힌 상황에서 국제유가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데다 물가 급등을 우려한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지정제 시행과 정유사 담합 여부 수사 등으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한 셈이다.
1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유사 매출과 이익에 직결되는 국제유가·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의 가격 등락이 극심하다. 전날 장중 110달러까지 치솟았던 서부텍사스유(WTI)와 브렌트유는 이날 가격이 90달러대 선으로 떨어졌다.
반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공급이 막힌 중동산 두바이유는 장중 107달러를 넘어섰다. 3대 유종 가격이 널뛰면서, 국내 정유사 수익의 기준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도 덩달아 변동폭이 커졌다. 지난 5일 배럴당 30달러에 육박했던 정제마진은 9일 -12달러까지 떨어졌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종별 가격과 정제마진이 하루 단위로 널뛰기를 하는 탓에, 매출과 수익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유가 변동보다 공급 문제가 더 심각하다. 원유 70%를 들여오는 중동지역 수입로인 호르무즈해협이 막힌 탓에 국내 공급이 사실상 중단됐다. 국내 정유사의 원유 증류 장치는 하루에 약 333만배럴을 정제할 수 있는 규모인데, 이 중 188만배럴가량이 중동 원유용으로 추산된다. 정유 시설은 기름 성분에 맞춰 만들어지기 때문에 중질유인 중동 원유와 성분이 다른 타 지역 원유는 쓸 수 없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 시설은 투입되는 원유의 점도와 산도에 굉장히 민감한 장비라, 성분이 다른 기름은 아예 넣을 수 없다”고 했다. 중동을 대체할 수입선을 확보한다 해도 정상적인 정유 시설 가동이 어렵다는 의미다.
설상가상으로 정유사를 향한 정부의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 SK에너지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를 상대로 담합여부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전쟁을 빌미로 정유사가 석유 제품 가격을 밀약했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금주 중 석유 최고가격지정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 상한선이 설정되면 정유사가 국제유가 변동분을 적절하게 반영하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한 손실은 정부가 보상해준다는 입장이지만 형평성 논란 등을 고려할 때 정유사들이 제대로 보상받게 될지 미지수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일본처럼 유류세 인하나 에너지 절약 유도 정책을 도입해 소비자와 정유사 모두 살리는 묘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