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복제약(제네릭) 약가 인하를 골자로 한 약가제도 개편안 시행 시기를 논의 중인 가운데,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약가 인하와 함께 성분명 처방 도입 등 제도 개편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제약업계에서는 수익 감소와 이로 인한 연구 축소 우려 등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어 제도 개편에 진통이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11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서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를 진행했다. 소위원회는 약값 인하율에 따른 여러 시나리오와 구체적인 시행 시기를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약가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지난 2012년 일괄적으로 인하했던 복제약 중 가격이 원조 약값 대비 45~53.55%인 복제약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가격을 원조 대비 40%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덜고 국민건강보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약제비 재정을 절감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의 약제비는 국민 전체 의료비의 20%를 넘어서면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5’에 따르면 우리 국민 1인당 약제비는 2023년 구매력평가(PPP) 기준 969달러(약 142만원)로, OECD 평균보다 47.3%나 많다.
이날 무상의료운동본부와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이 국회에서 개최한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 확보’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나영균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1인당 약제비는 GDP 수준이 비슷한 영국과 호주와 비교해도 현저히 많다”며 “한국은 국민 의료비의 20.5%를 약제비가 차지한다. 미국은 1인당 약제비가 더 많지만, 의료비 대비 비중은 11.5%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약값 부담은 건강보험 재정을 위협할 만큼 나날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건강보험 약품비는 2011년 13조 1000억 원에서 2024년 27조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의 약품비 비중은 51.7%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처럼 약값 지출이 과도한 현상의 배경으로는 국내 약가 구조가 복제약 가격대가 높고 가격 경쟁을 제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복제약의 가격은 통상적으로 처음 개발된 오리지널의 53.55%로 정해진다. 나 교수는 “오리지널약 대비 한국 제네릭 약가는 OECD 평균 25%의 2배 수준으로, 우리나라는 제네릭을 써도 재정 절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후진국형 시장 구조”라며 “주요 선진국에서는 제네릭 진입 초기에는 오리지널약 대비 50∼60%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더라도 다수의 경쟁자가 진입함에 따라 1년 안에 오리지널약의 10∼20% 수준으로 가격이 급락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의사가 성분명이 아닌 특정 브랜드명으로 처방하는 상품명 처방 관행 때문에 약사가 동일한 성분의 더 싼 제네릭으로 약을 교체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 때문에 국내 대체조제율이 0.79%에 머무른다”고 덧붙였다.
나 교수는 대안으로 ‘성분명 처방 의무화’, ‘참조가격제 도입’, ‘복제약 경쟁입찰제’를 내세우며 약가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조가격제란 동일성분이나 약리, 치료 효과 등으로 약품을 묶고, 최저가 약품을 기준으로 보험가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복제약 경쟁입찰제는 기존에 동일한 성분일 경우 수십 개의 복제약이 등재되어도 가격 경쟁 없이 유사한 가격대를 유지해 온 방식에서 벗어나 건보공단이 동일성분∙동일효능 약에 대해 가격 입찰을 하고 최저가 5개 제품만 급여 등재를 하는 제도다. 나 교수는 성분명 처방으로 연간 7.9조원, 참조가격제로 2.6조원, 복제약 경쟁입찰제로 3조원 등 총 13.5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행 건강보험 약품비(27조원)의 절반가량을 절감하는 효과를 갖는다.
다만 제약업계는 약가제도 개편에 반발하고 있다. 약가를 인하할 경우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연구개발(R&D) 및 투자 위축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전날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1월 정부의 약가 인하 개편안 발표 이후 산업계 등의 문제 제기에도 지금까지 합리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급격한 약가 인하에 제약산업은 무너진다”며 “약가 인하의 파급 효과를 분석하기 위한 정부∙산업계 간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는 성분명 처방과 관련해 국회에서 입법 과정을 밟는 것에 반발하며 이날 ‘성분명 처방 저지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의협은 성분명 처방을 두고 의약분업 체계를 흔든다고 저항한다.
한편 정부는 국민 건강과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함께 고려해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성분명 처방과 관련해서도 의약품 수급 불안 해소와 제도 도입 방식 등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