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장기를 두던 선호출(78)씨가 목청을 높이자 주위 노인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아이다. 투표는 해야지. 그런다고 국힘을 버릴 건교.” 옆에 있던 김문엽(71)씨의 반박에 선씨는 역정을 냈다. “저거 뭐라는기고. 새 판 짜야 된다 카는데. 짐승도 이나마 안 될 거 같으면 아예 도태시키뿌는기라.”
6·3 지방선거를 80여일 앞두고 찾아간 대구의 분위기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세계일보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보수의 텃밭’인 대구 두류공원과 서문시장, 경상감영공원, 동성로 일대 등에서 만난 시민들은 국민의힘을 향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70~80대 고령층은 “그래도 국민의힘을 찍겠다”고 입을 모았지만, 50~60대 중년층 사이에선 “이재명의 정치가 훨씬 와닿는다”며 여권에 힘을 싣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보수 성지’도 “김부겸 나오면 모른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한동훈 전 대표가 연이어 다녀간 대구 보수의 성지 서문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시장 입구에서 12년 넘게 땅콩빵 등 주전부리를 팔아온 김정이(63)씨는 “국민의힘 당내 싸움이 너무 길어지니까 거기에 대한 염증을 느낀 것 같다”며 “솔직히 이재명 대통령이 내놓는 정책을 보면 서민에게 와닿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구의 정치권을 향해서도 “함량 미달이 너무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구·경북 통합도 자기들이 정권 잡았을 때 추진하지 않았나”라며 “대구를 위해 일하는 사람 같았으면 그 당시에 해냈어야지, 지금은 발목 잡기밖에 안 되고 있다”고 짚었다.
서문시장에서 30년 넘게 지낸 이태희(54)씨의 평가는 더욱 가혹했다. 이씨는 ‘보수의 텃밭’이라는 기자의 말에 “정치인들이 자기들끼리 만들어 낸 분위기”라며 “내 또래 사람들은 생각이 바뀌고 있다. 솔직히 민주당이 잘하고 있지 않나. 국민의힘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래도 대구 시민들은 ‘우리가 남이가’라고 생각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이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문제죠. 우리는 남인데, 그 사람들이 뭘 했다고.”
경상감영공원에서 만난 장모(71)씨는 이번 지방선거 때 민주당 후보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나올 경우 그를 찍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을 찍어도 삶이 나아지는 게 없으니, 차라리 대구 의원 경력이 있는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것이다. 장씨는 “대통령이 지금 민주당 이재명 아닌가”라며 “이번엔 김부겸이를 해가 지원을 받아 대구 경기도 좀 살리고, 민생지원금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젊은 층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동성로 인근 편의점에서 일하던 이모(19)씨는 “어르신들은 여전히 보수적인가. 요즘은 기류가 다 민주당 쪽”이라며 “인공지능(AI) 쪽에서 이 대통령이 되게 잘한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이 나이대는 잘한다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며 “찾아보고 하니 2번보단 1번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았다”고 부연했다.
◆“그래도 국힘… 묵은 사람 다 바꿔야”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선거 판세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라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서문시장 지하상가 금은방을 운영하는 김광숙(74)씨는 “그래도 우리는 대구시민이고, 대구는 국민의힘의 텃밭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저쪽에 계시지 않나”라며 “그래도 국민의힘을 밀어줘야지, 다 민주당 줘버리면 지금도 이 모양인데 어떻게 되겠노”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내분에서 못 벗어난 국민의힘에 실망한다는 목소리도 컸다. 김씨는 “민주당은 비리가 많아도 똘똘 뭉쳐서 체계적으로 정치를 이끌어가는데, 국민의힘은 서로 자기 밥그릇 챙기려고만 생각해 단합이 잘 안 된다”며 “힘을 뭉치면 적극적으로 국민의힘을 밀어줄 수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그걸 못하고 맨날 당 안에서 그카니까네…”라고 혀를 찼다. 옆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던 채만철(68)씨도 “민주당을 어느 정도 견제해야 되니 국민의힘을 찍어줄 수밖에 없다는데, 솔직히 말하면 투표할지 말지 망설여진다”며 “지금 국힘은 극우 보수 세력이 당권을 쥐고 있는데, 저래가면 절대로 보수 재건 못 한다고 본다”고 성을 냈다
싸늘한 대구 민심의 이면에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구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도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재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33년째 전국지자체 중 최하위 수준으로, 규모도 충남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택시기사 이모(59)씨는 “여기 뭐 큰 회사가 있나, 공장이 있어 젊은 애들 일을 하게 하나. 섬유도 망했지, 이제 아무것도 없다”며 “대통령 몇 번 나오고 국회의원 밀어준들 뭐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다 지 자리 보전할라 카지, 대구 발전 아무 관심 없다”며 “지금 묵은 국회의원들은 다 바꿔야 된다”고 덧붙였다.
일부 보수 지지자 사이에선 후보자 간 호불호가 엇갈리며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본인을 전한길씨의 팬이라고 소개한 박모(70)씨는 “이진숙 아니면 추경호 쪽으로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80대 남성 김모씨도 “주호영 같은 사람은 30살 때부터 영감 소리를 듣지 않았나”라며 “이진숙은 대한민국의 보배다. 해박하고 깨끗하다”고 했다.
철옹성 같던 대구의 보수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엔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시장에서 7년 반 동안 옷가게를 운영해온 채모(58)씨는 “(반대 여론이) 절반 정도는 돼야 뒤집을 수 있는데, 대구는 아직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예전에는 어른들이 눈만 뜨면 모여서 민주당 욕을 했는데, 계엄 이후로는 그런 얘기를 더 이상 안 한다”고 귀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