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가 없이도 조각 설치 분야에서 시간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성립한다면 과연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까.
어느 날, “미술사 안의 것들을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이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젊은 미술가 티노 세갈(Tino Sehgal)에게 ‘키스(Kiss)’라는 말이 들어왔다. 키스는 미술사에서 조각과 회화 등 여러 작품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연인 조각상 「키스」를 비롯해,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부터 미국 설치미술가 제프 쿤스까지.
그래, 키스를 라이브로, 시간 예술로 구현해보자. 그리하여 세갈은 조각이나 회화 등 전통적인 예술 매체에 묘사된 영구적이고 정적인 형태와 이미지의 키스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몸을 통해 생생하고 즉각적인 경험으로 변형시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키스」(2002)였다.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퍼포먼스 작품.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출발점, 아하 하는 순간은 여러 가지”라고 말한 그의 작품 「키스」는 2007년 시카고 현대미술관(MCA Chicago)에서 선보이는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지난 3일 오픈한 현대 미술가 티노 세갈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의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생각하는 사람’ ‘발자크’ 등 로댕의 조각 12점을 배경으로 젊은 남녀가 바닥에 누워 몸을 포개고 관능적인 포옹과 키스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평상복을 입은 두 남녀는 마치 한 몸처럼 천천히 끊임없이 자세를 바꾼다. 나란히 누워 포옹을 하고, 무릎을 꿇고 서로의 팔을 꼭 껴안고 키스하기도 하며, 여자가 눕고 남자가 위에서 바라보다가 서로를 끌어당겨 키스하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미술관이 공개 모집한 전문 무용수 출신의 작품 ‘해석자(Interpreters)’들이고, 퍼포먼스는 미술사의 다양한 키스 장면을 재구성해 두 해석자가 경험하게 하는 구성된 상황 작품 ‘키스’이다. 2명씩 두 팀으로 이뤄진 해석자들은 전시 시간 8시간 중 매일 4시간씩 교대로 키스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보통 은밀하게 이뤄지는 행위가 전시장 한복판에서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상황에, 관객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용히 앉아 지켜보는 사람도 있고, 눈을 크게 뜬 채 되돌아서는 사람도 있으며, 황망하게 되돌아섰다가 다시 되돌아와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관객의 반응까지 더해져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세갈은 “사람들은 가끔씩 예술이라는 것이 관객과 작품 사이에서 떠오르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은 (작품과 관객이) 함께 하는 어떤 게임 같은 것”이라며 “로댕의 조각 작품에 대한 확장이나 해체가 아닌, 지속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티노 세갈의 이번 전시는 25년간 비물질적 미술 작품을 만들어 온 작가의 작품 세계를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자리다. ‘키스’ 포함해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 ‘무제’ 등 총 8개의 구성된 상황이 준비됐다. 이 중 4개 작품은 전시 기간 내내 볼 수 있지만, ‘이 입장(This entry)’과 ‘이 환희(This joy)’, ‘이 당신나나당신(This youiiyou)’ 세 작품은 6주씩 돌아가며 열리고, 미술관 정원에서 열리는 ‘이 당신(This you)’은 날이 풀리는 4월3일부터 볼 수 있다.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This is so contemporary)!” 전시를 앞두고 지난달 25일 언론에 선공개한 미술관 입구에서 미술관의 보안요원처럼 분장한 해석자 세 사람이 입장객 주위에서 발랄하게 춤추며 반복해 외쳤다. 깜짝 놀라서 이들을 피해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의 몸짓에 호응하듯 가볍게 몸을 흔들며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관객의 반응까지 더해지며 작품이 만들어지는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2004)이다.
전시장 로비에서는 7명의 해석자가 관람객 사이에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는 2026년 작 ‘무제’를 만나게 된다. 언뜻 보면 해석자인지 일반 관객인지 알 수 없는 해석자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교감하고, 관람객에게도 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기도 한다.
전시장 중앙으로 들어서면 무용수와 바이올린 연주자, 축구 선수, 사이틀 선수 등 4명의 해설자들이 각각 바이올린과 축구공, 자전거를 신체의 연장처럼 다루며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 후안 마타와의 협업에서 시작된 ‘이 입장(This entry)’이다.
각 작품들 사이에 존재하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비즈 커튼은 작품간의 자연스런 칸막이 역할을 하면서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안긴다. 마치 영화 「레옹」에서 게리 올드만이 연기한 미국 마약 단속국 소속의 부패한 악당 형사가 등장할 때 같은 느낌을 줄지도.
전시장을 찾는 관객들은 도록이나 레이블, 홍보용 이미지, 기념품 등을 하나도 얻을 수 없다. 심지어 인증샷이나 영상 촬영조차 금지된다. 관객들에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 현재의 순간에 머물기를 권하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 오로지 작품과의 교감과, 몸의 경험과, 남은 기억뿐. 전시는 구성된 상황 속에서 관객이 직접 겪은 경험과 기억만을 중요하기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시는 리움미술관의 건축적 공간과 소장품이 티노 세갈의 ‘구성된 상황’과 다양한 층위에서 교감하면서 새로운 관계성을 형성하고, 관객 역시 이 상황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티노 세갈은 전시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물질 없이도 조각 작품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이런 작품을 구성하게 됐다”며 “사물이라는 것을 넘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저의 작업”이라고 말했다.
“산업 사회는 저에게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그 무언가였습니다. 언덕의 고층 빌딩에 있던 제 방에선 도시의 생산 시설이 한눈에 다 보였지요. 자동차 회사와 그 옆의 컴퓨터 회사의 생산 시설이 보였고, 공장에서 노동을 하거나 관리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지요. 학교를 갈 때 타는 스쿨버스가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타는 통근 버스와 동일한 것이었고요. 채굴을 더 많이 하고 더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산업사회는 도저히 지속 가능하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무엇을 하지, 라고 생각을 했지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세갈은 어린 시절 공장이 둘러싸인 독일의 산업도시에서 자라면서 산업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현대 무용을 전공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커졌다. 자원을 소비하지도 않고 물질적 대상도 없는 예술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마침내 그가 생각한 것은 결국 인간의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20세기를 위한 20분」(2000)과 같은 초기작을 통해 무용과 미술의 학제간 연계를 시도했고, 「이것은 프로파간다」(2002)와 「키스」(2002) 등을 통해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에 관람객의 참여와 말하기를 도입했다. 특히 201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최된 개인전 「디스 프로그레스(This Progress)」에선 미술관 전체를 비우고 오직 ‘대화’로만 채웠고, 2012년 런던 테이트 모던의 터바인 홀에선 수십 명의 해석자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규모 퍼포먼스 「These Associations」를 선보여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 같은 예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동시대 미술의 대표 작가로 떠올랐다.
세갈은 작품을 물질로 남기지 않겠다는 철학에 따라 작품을 관객들의 경험과 기억, 이를 기록한 글에만 남기고 있다. 그는 “회화와 조각도 오래된 예술이지만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나 무용 등 형태가 없는 예술도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다”며 “아이에게 야구를 가르칠 때 책이나 영상이 아닌 직접 몸으로 알려주듯 몸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미술관과 계약을 할 때도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공증인 앞에서 구두로 판매한다. 소장 계약이 이뤄지면 미술관은 해당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고, 작가는 전시 때마다 해석자에게 작품을 구현하는 방법을 직접 구두로 알려준다.
“20세기 앤디 워홀이나 미니멀리즘 작품들은 당시 산업 사회를 아주 훌륭하게 반영했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시간 기반 예술은 탈산업사회로 넘어가는 현대에 걸맞은 형식이고, 현대 사회를 잘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개별적인 것보다 관계나 연결이 더 중시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에서 예술가들은 자기 시대의 역사화를 그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연 그는 “한국 관람객들이 동시대 미술에 매우 개방적이라고 알고 있다. 예술은 함께하는 게임이라 생각하는데 함께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