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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의 불발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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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초반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은 영국 상륙작전도 계획했다. 하지만 강력한 영국 공군의 저항으로 제공권 장악이 어려워지자 독일 공군은 대대적인 런던 공습에 나섰다. 이에 독일 폭격기 및 전투기들이 투하한 폭탄들 가운데 불발탄의 안전한 처리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훗날 그의 ‘2차대전 회고록’에서 여성 1명을 포함해 3인1조로 구성된 어느 불발탄 처리반의 헌신적 노력을 소개했다. 그들은 개전 후 34개의 불발탄을 안전하게 제거했으나 35번째 폭탄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만 폭발 사고로 1명이 숨졌다. 처칠은 “우리의 가장 숭고한 목숨이 희생됐다”는 말로 애도를 표했다.

 

지난 2014년 서울 중구의 어느 주택 공사장 지하에서 6·25 전쟁 당시 투하된 것으로 보이는 1m30㎝ 길이의 불발탄이 발견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군인들이 해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4년 서울 중구의 어느 주택 공사장 지하에서 6·25 전쟁 당시 투하된 것으로 보이는 1m30㎝ 길이의 불발탄이 발견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군인들이 해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오늘날 한국을 비롯해 세계 거의 모든 나라 군대에는 ‘폭발물 처리반’(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이란 조직이 있다. 폭탄 등 폭발물의 설치 및 해체가 주된 임무이나 간혹 불발탄 처리를 맡기도 한다. 6·25 전쟁 후 70년 넘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6·25 때 불발탄이 발견돼 EOD가 출동해 제거했다는 소식이 간혹 전해지곤 한다.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6·25 당시 미군 등 유엔군 공군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된 평양에서 불발탄이 종종 발견된다. 이는 이른바 ‘미 제국주의’에 대한 인민의 분노를 자극하는 소재로 동원되는 것이 보통이다.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 작센주(州)에 있는 도시로 동·서독 분단 시절에는 동독에 속했다.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13∼15일 연합군이 드레스덴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이는 미국이 아닌 영국 공군이 주도했다. 그 때문에 ‘대전 초반 런던을 겨냥한 독일 공군의 공격에 앙심을 품은 처칠과 영국 공군의 복수’란 해석을 낳기도 했다. 독일 민간인 약 2만5000명이 목숨을 잃은 드레스덴 폭격을 두고 전후 국제사회에선 “전쟁이 사실상 다 끝난 마당에 불필요한 작전이었다”는 비판이 거셌다. 오늘날 독일의 극우 세력은 드레스덴 공습을 “연합국에 의한 전쟁 범죄”로 규정하며 “독일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오히려 2차대전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편다.

 

독일 동부 도시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엘베강에 놓인 카롤라 다리 공사 현장. 2024년 9월 붕괴 사고가 일어나 잔해 철거 후 다시 짓는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2차대전 때 불발탄이 연달아 발견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독일 동부 도시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엘베강에 놓인 카롤라 다리 공사 현장. 2024년 9월 붕괴 사고가 일어나 잔해 철거 후 다시 짓는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2차대전 때 불발탄이 연달아 발견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지난 11일 드레스덴 시내에서 무게가 250㎏이나 나가는 2차대전 때 불발탄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작전이 실시돼 시가지 일부 구간 출입이 통제되고 주민 등 1만8000명 이상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불발탄은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엘베강(江)에 놓인 카롤라 다리 재시공 공사 현장에서 목격됐다. 2025년 한 해 동안만 불발탄 4개가 나온 장소로, 이번이 벌써 5번째다. 81년 전 드레스덴 폭격이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새삼 깨닫게 만드는 대목이다. 앞으로 몇 개가 더 발견될지 모르니 주민들로선 매우 불안할 것이다. ‘드레스덴 공습은 전쟁 범죄이고 독일은 무고한 피해자’라는 극우 세력의 선동에 악용되지 않을까 염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