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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지킨 남자' 사육신 후손들 갈등에…올해도 '두쪽'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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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포함 여부 놓고 반세기 다툼…몸싸움에 소송전까지 이어져
세조 후손과는 569년만 '화해'…'왕사남' 흥행 계기 통합 목소리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사육신(死六臣)묘에는 이름과 달리 6기가 아닌 7기의 묘소가 있다.

단종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걸로 익히 알려진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외에도 김문기의 가묘가 설치돼있기 때문이다.

이들 묘역을 두고 촉발된 사육신 후손들의 다툼이 반세기 동안 이어지면서 올해 제사도 '두 쪽'으로 찢어져 치러질 전망이다.

15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다음 달 12일 후손 단체인 '사육신선양회'(이하 선양회)가 사육신묘에서 여는 춘향제에 또 다른 후손 모임인 '사육신현창회'(이하 현창회) 측 인사는 불참한다.

현창회는 매년 10월 9일 한글날 이곳에서 추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선양회는 같은 날 강원 영월군에 있는 사육신 사당 창절사에서 열리는 제사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들의 갈등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가 김문기를 사육신으로 현창해야 한다고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1456년 군 최고위직인 삼군도진무였던 김문기는 단종 복위 운동에 군대를 동원하는 역할을 맡았다가 실패하고 몸이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사육신묘에는 원래 성삼문·박팽년·이개·유응부만 안장돼있었으나, 서울시는 국사편찬위원회 결의에 따라 묘역을 성역화하면서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가묘를 새롭게 조성했다.

기존의 사육신 후손들이 주축인 선양회는 생육신(生六臣) 중 한 사람인 남효온(1454∼1492)이 쓴 사육신 전기인 '육신전'에 김문기의 이름이 없다고 지적한다.

갑작스레 사육신에 포함된 배경엔 김녕 김씨로 김문기의 후손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반면 김문기 후손들이 몸담고 있는 현창회는 사육신의 처형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유응부 대신 김문기의 활동상이 적혀있다고 반박한다.

갈등이 첨예해지며 급기야 2011년에는 김문기 후손이 선양회 회원들이 차린 제사상을 뒤엎는 등 사육신묘 앞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선양회 측 인사가 김문기를 비난하는 댓글을 썼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선양회는 2014년부터 매년 4월 둘째 주 일요일에 김문기를 배제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당시 서울시장까지 나서며 2020년 양측 간 화해가 시도됐으나 현창회가 펴낸 사육신 평전의 수록 순서를 둘러싼 갈등 끝에 수포가 됐다.

선양회는 전날 회의를 열고 '사육신 왜곡 사건의 전말'(가제)이라는 전자책을 펴내기로 했다. 이 책에는 김문기가 사육신을 '배신'했다는 주장도 담길 것으로 보여 양측 간 갈등이 다시 점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양회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권력의 압력을 받고 사육신에 억지로 김문기를 집어넣은 게 문제의 원인"이라며 "사육신묘에 김문기의 가묘를 만든 건 엄연한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원상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문기의 후손인 김종성 현창회 총무이사는 "'사육신'이라는 이름은 500년간 지켜온 가치가 있기 때문에 지키더라도 사람은 7명을 모셔야 한다"며 "(선양회가 펴낼 책에) 욕설이 없다면 그냥 놔두는 거지만 비방 정도에 따라 (대응)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유응부의 본관을 둘러싼 논란이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하며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선양회에서 활동 중인 천녕 유씨는 2019년 현창회 측의 기계 유씨 족보에 유응부의 이름을 삭제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5년간의 심리 끝에 2024년 양측의 주장을 모두 입증할 확실한 근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세기 동안 격렬히 싸워온 후손들도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센 초로의 신사가 됐으나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단종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계기로 후손들 사이에서도 화해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선양회는 지난해 세종과 세조의 직계 후손인 이준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을 사육신 제사에 처음 술잔을 올리는 초헌관으로 참여시켰다.

569년 만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들이 '화해의 손'을 맞잡았으나 정작 사육신 후손 간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셈이어서 빛이 바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개의 후손인 이임구씨는 "양측 후손들이 감정만 내세우지 말고 합리적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조상님들 입장에서 보면 후손들이 다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