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국내 학계에서 팝스타를 방불케하는 높은 인기를 누렸던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프랑크푸르트대 명예교수가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6년 한국을 찾아 전국을 순회하며 독일 통일의 교훈 등을 들려준 지 꼭 30년 만이다.
14일(현지시간) BBC 방송 등에 따르면 독일 출판사 수어캄프는 이날 하버마스가 남동부 바이에른주(州) 슈타른베르크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1955년 대학 동창생 우테 베셀회프트와 결혼한 고인은 2025년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70년을 해로했다. 슬하에 세 자녀를 낳았는데 막내딸은 지난 2023년 부모보다 먼저 사망했다.
1929년 6월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하버마스는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의 본 대학교 등에서 철학, 심리학, 문학, 경제학 등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철학 연구자로 방향을 틀었다. 1950년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요람으로 불리던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 들어가 학문적 역량을 쌓기 시작했다.
하버마스는 18세기 유럽 부르주아 살롱에서 비롯한 ‘공론장’의 개념이 20세기 들어 대중 매체가 지배하는 공적 공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한 이론으로 유명하다. 1981년 출간된 대표작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현대 철학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되며, 철학 분야를 넘어 20세기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오죽하면 ‘19세기에 (칼) 마르크스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하버마스가 있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199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서 하버마스는 가장 첨예한 화두였다. 1990년대에만 총 175편의 하버마스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하버마스를 주제로 한 책은 1980년대에 번역서 8종이 출간된 데 이어 1990년대 들어 16권의 번역서와 13권의 연구서가 추가됐다. 가히 ‘하버마스 신드롬’으로 불릴 만한 이례적 현상의 절정은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6년 4, 5월에 이뤄진 한국 방문이었다. 서울대 초청으로 방한한 하버마스가 약 2주일의 국내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강연장과 행사장마다 수천명이 몰렸고, 언론사들도 관련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당시는 냉전이 끝나고 동·서독이 통일된지 얼마 안 지난 시점이었던 만큼 하버마스에겐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정세 전망 등을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하버마스는 “독일과 한국은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으므로 성급하게 독일의 경험을 한국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조언했다. “북한은 독자성이 강한 나라인 만큼 옛 동독처럼 스스로 붕괴할 가능성은 적다”고 전제한 하버마스는 “통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태도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족’보다는 ‘민주’가 통일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같은 민족이란 혈통적 유대감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오스트리아의 통합에서 보듯 정치적으로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향후 발전 방향을 묻는 질문에 하버마스는 뜻밖에도 “앞으로의 발전 모델을 굳이 서유럽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이 걷고 있는 길은 어느 나라도 걸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하버마스는 한국 지식인들을 향해 “불교와 유교라는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근대적 삶의 방식과 조화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충고를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